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 걸음] 다보스의 기업인 vs. 발묶인 기업인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1.18 17:11

수정 2017.01.18 17:11

[이구순의 느린 걸음] 다보스의 기업인 vs. 발묶인 기업인

"상업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오.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래를 꿰뚫어 보고 판단하는 것이 장사요." 조선후기 한 무역상인을 다룬 상도라는 소설 대목이다. 비즈니스란 게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그에 맞춰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세계경제포럼이 개막했다. 지난해 4차 산업혁명이라는 주제를 내세워 세계 4차 산업혁명의 시계를 세바퀴 정도는 빨리 돌려버린 그 행사다.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경제석학, 정치인들이 일제히 다보스에 집결했다. 이들이 다보스에 모인 근본적 이유 한 가지만 들라면 '변화하는 미래를 꿰뚫어볼 눈'을 얻기 위한 것 아닐까 싶다.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와 이토 조이치 MIT 미디어랩 소장, 지니 로메티 IBM 회장이 글로벌 산업 변화의 동력으로 자리잡은 인공지능(AI)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지, 기업과 소비자, 정부는 어떤 사회적·도덕적 관념으로 AI에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해 토론했다. AI 사업을 하겠다는 기업이면 누구라도 듣고, 토론해야 할 주제다. 이런 얘기를 듣기 위해 세계 경제 주역들이 다보스로 간 것이다.

반면 서초동에 발이 묶인 사람들이 있다. 이 칼럼이 배달됐을 아침에는 결론이 났겠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지켜보는 삼성그룹의 사장들이다. 연매출 300조원, 시가총액 400조원의 글로벌 기업을 이끄는 사장들의 발은 서초동에 묶였다. 뒤이어 SK, 롯데 등등 줄줄이 서초동에 발이 묶일 것이라는 우울한 예상도 나온다.

다보스에서 미래변화를 토론한 사람들과 서초동에 발이 묶인 사람들이 내년 이맘때 드러낼 '차이'가 두렵다.

200년 전 상인도 얘기한 '미래를 꿰뚫어 보는 눈'을 서초동에 발 묶인 사람들이 가질 수 있을까. 서초동에 묶인 이들이 앞날을 예측하는 눈이 어두워지면 이들의 장사는 어찌 될까. 이들이 제대로 장사를 못하면 대한민국 경제의 경쟁력은 어떻게 될까. 우리 청년들의 일자리 걱정은 더 커지지 않을까.

인정하기 부끄럽지만 대한민국에는 대기업과 정치가 은밀하게 연결돼 있는 고리가 분명 있다. 청산해야 할 숙제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풀 수 있는 숙제는 아니다. 거대한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문제라서다. 오랜 시간 굳어진 시스템이니 서서히 대안을 찾아가며 바꿔야 한다. 그런데도 일부 정치권과 특검은 대기업 총수 한둘을 구치소에 가두고, 거대한 시스템을 통째로 바꿨다고 자랑이라도 할 태세다.
아무도 믿지 않을 텐데 말이다. 숙제를 푸는 데 딱히 도움도 안 될 텐데 말이다.
다보스에서 세상의 변화를 논해야 할 장사꾼들을 서초동에 묶어두는 것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내년 이맘때 어떤 결과로 우리의 현실이 될지 온 국민이 냉정한 셈법으로 계산해 봤으면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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