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차장칼럼] 2년전 삼성물산 할머니 주주의 호소

전용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1.19 16:52

수정 2017.01.19 16:52

[차장칼럼] 2년전 삼성물산 할머니 주주의 호소

"1950주를 소유하고 있는 개인 소액주주다. 과거 10년 전에 SK를 먹으려고 소버린이 많은 애를 쓰다가 물러났고,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점령해서 한탕 엄청 많은 액수를 튀겨서 떠났으면서도 우리나라를 또 걸어서 소송을 했다. 엘리엇이 외국인만 아니고 한국인으로서 이런 이유로 걸었다면 저도 동조를 하겠다. 그러나 외국 사람들, 강대국이라고 남의 나라 기업을 얕보고 이걸 송두리째 삼키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본 주주는 국익을 먼저 생각하고 개인으로 엄청 가슴 아프고 쓰라리다. 국익을 위해서 지금 집행부에서 제시한 합병 승인의 건을 원안대로 승인할 것을 (재청에 이어) 삼청하는 바이다.
"

지난 2015년 7월 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표결을 위한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에서 백발의 할머니 한 분이 어렵게 발언권을 얻었다. 10주만 가지고 있어도 삼성물산 직원들이 수박을 들고 찾아 간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 할머니는 무려 1950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발언의 핵심은 '개인적으로는 엄청 가슴 아프고 쓰리지만 엘리엇이 공격하는 만큼 국익을 위해 찬성하겠다'로 요약된다. 합병에 반대하는 개인 주주들조차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지니먼트의 한국 대표기업 공격을 우려했을 정도다. 2시간에 달하는 치열한 찬반토론 끝에 표결이 진행됐다. 개표 결과, 참석 주주의 3분의 2가 넘는 69.53%의 찬성표를 받아 합병이 통과됐다. 합병안 통과를 위해 필요한 66.67%보다 불과 2.86%포인트 많았다.

1년6개월이 지난 지금.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검찰 수사,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 특별검사팀 수사까지 진행되면서 뒤늦게 삼성물산 합병이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특히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을 놓고 관련자가 구속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당시 국민연금 지분(11.21%)보다 두 배 이상 지분을 갖고 있으면서 개인적 손해를 감수하고도 찬성표를 던진 개인 주주에 대해선 그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출석한 개인 주주의 84%가 합병에 찬성하는 등 지분 22.06%를 가진 개인 주주의 절대적인 찬성이 없었다면 합병이 불가능했다.

다른 정치적 이슈와 마찬가지로 삼성물산 역시 앞으로 어떻게 되든 특검은 특검대로,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자신들의 목적만 달성하면 훌쩍 떠날 것이다. 삼성물산이라는 존재가 있었는지도 기억 못할 것이 뻔하다. 폭풍이 휩쓸고 간 뒤 만신창이가 된 삼성물산을 보듬는 것은 고스란히 개인 주주의 몫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청문회에서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합병이 옳은 일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이재용 부회장 앞에는 지난하고 치열한 법정공방이 기다리고 있다.
개인 주주들은 특검이 손털고 떠나간 그 자리에 서서 법정공방이 끝나기를 또다시 맘 졸이고 바라볼 것이다.

courage@fnnews.com 전용기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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