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사랑하니까 무죄?… 갈수록 심해지는 '데이트 폭력'

조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1.21 14:00

수정 2017.01.21 14:00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데이트 폭력'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이를 사회적 문제로 보는 인식이 늘었다. 반면 관련 대책은 전무한 상황이다.

■ 남녀 91% "데이트 폭력, 연인 간 사적인 문제 아냐"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최근 전국 만 13~59세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데이트 폭력 관련 인식 조사를 벌인 결과, 많은 사람이 데이트 폭력을 심각한 문제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열 명 중 아홉 명(91%)은 데이트 폭력을 엄연한 범죄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89.2%가 알려지지 않은 데이트 폭력 사례가 더욱 많을 것이라는 데 입을 모았다. 데이트 폭력을 사적인 문제로 국한해서 보는 사람은 전체의 30.4%에 그쳤다.

실제 데이트 폭력 상황을 목격하면 경찰에 신고할 것이란 의견은 73.2%였으며 자신이 데이트 폭력을 당할 경우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뜻을 밝힌 사람은 63.3%였다.
데이트 폭력에도 만남을 지속하는 것을 문제 삼는 이도 적지 않았다. 67.3%가 데이트 폭력을 당하면서 헤어지지 못하는 피해자도 문제가 있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데이트 폭력을 사회적인 문제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주변에서 상황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전체의 62.7%가 직접 데이트 폭력 상황을 목격하거나 들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이 접한 남녀 간 데이트 폭력 유형은 △ 상대방에게 고함을 지르는 행위(61.2%) △ 험한 말이나 욕설을 내뱉는 행위(60%)였으며 △ 상대방을 비하·무시하는 말을 하는 경우(52.6%) △ 헤어진 이후에도 상대방에게 집착하거나(45.3%) △ 서로의 사생활에 깊숙하게 관여·간섭하는(38.8%)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 뒤로 △ 상대방에게 물건을 던지거나(35.2%) △ 강제로 손목을 잡은 채 끌고 간 사례(34.9%) △ 벽을 치거나 때리는 시늉을 하는 등 위협적인 행동을 한 사례(33.8%)가 있었다.

데이트 폭력을 직접 당한 이도 상당수였다. 연인 관계 또는 부부 관계에서 애인 및 배우자가 폭력적인 행동이나 태도를 보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절반 정도(48.3%)가 상대방이 화가 나 자신에게 소리를 지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비교적 나이가 많을수록(10대 16.5%, 20대 35%, 30대 60.5%, 40대 63%, 50대 66.5%), 그리고 결혼한 경우(65.3%) 더욱 자주 겪은 것으로 파악됐다. 네 명 중 한 명(26.6%)은 험한 말과 욕설을 들은 경험이 있었으며 13.1%는 신체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스킨십 문제로 인한 데이트 폭력도 자주 있었다. 전체의 28.6%가 원하지 않을 때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스킨십을 요구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경험 역시 높은 연령대(10대 14%, 20대 27.5%, 30대 28%, 40대 36%, 50대 37.5%)에게 더욱 많았다. 야한 영상을 보도록 강요받거나(14.3%), 성적 수치심이 드는 말을 들은 경험(12.2%)도 적지 않았다.

정작 데이트 폭력으로 헤어진 경우는 적은 편이었다. 데이트 폭력을 경험한 사람 열 명 중 단 두 명(19.4%)만 만남을 지속하기 어려워 헤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대부분은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단점을 고치려 노력했거나(44.1%) 크게 문제를 삼을 정도는 아니라고 여겨 용서했던(33.%) 것으로 나타났다.

제공=트렌드모니터
제공=트렌드모니터

■ 나날이 느는 피해자… 관련 법안은 없다

지난 9일 서울 논현동 빌라 주차장에서 이모씨(35)가 전 남자친구 강모씨(33)에게 맞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13일 끝내 숨졌다. 발견 당시 이씨는 두개골이 완전히 골절된 상태였다. 그는 강씨에게 결별을 통보했다가 폭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이 일어나기 불과 세 시간 전, 경찰은 이씨의 주거침입 신고를 받고 강씨를 경찰서로 연행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1년 정도 동거인으로 지낸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바로 풀어준 것으로 확인됐다. 안일한 대처로 사고를 키웠다는 논란이 일자 경찰은 "연인 간 다툼은 사생활이기 때문에 강씨를 붙잡아둘 명분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경찰관직무직행법 4조에서 '정신착란을 일으키거나 술에 취해 생명·신체·재산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만 보호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어 따로 조치를 취하기 어려웠던 것. 부부 사이의 폭력 사건은 가정폭력범죄 특례법에 따라 격리조치할 수 있지만 연인 사이의 데이트 폭력을 규제할 법은 전무해 신고를 받더라도 주의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폭행치사 27명, 상해치사 36명을 포함한 총 296명이 연인에게 목숨을 잃었다. 살인미수 피해자는 309명이었다. 같은 기간 △ 연인 폭행으로 검거된 사람은 1만 4609명 △ 상해는 1만 3221명 △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은 5678명 △ 강간·강제추행은 2519명이었다. 대검찰청 범죄분석 자료에서는 2004년부터 2015년까지 살인범죄 피해자 1만 283명 중 피해자가 연인이었던 경우가 1059명으로 전체의 약 10%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가 그야말로 심각한 수준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데이트 폭력 피해에 이를 방지·대처할 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관련 움직임은 계속 답보 상태다.
2016년 2월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데이트 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을 발의했으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의되지 못한 채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joa@fnnews.com 조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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