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금융, 하로동선의 지혜가 필요하다

김용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1.26 15:31

수정 2017.01.26 15:41

夏爐冬扇 . 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
[데스크칼럼] 금융, 하로동선의 지혜가 필요하다

누군가 지난해 금융권을 한마디로 요약해달라고 요청하면, 난 '대체로 평온했던 시절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길다면 긴 한 해를 보내다 보면 어렵고 험한 일이 왜 없었겠는가. 한진해운 법정관리 결정과 이에 따른 은행 부실여신 후폭풍, 대우조선해양 처리 문제 등으로 사실 골치 좀 아팠다. 특히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는 뼈 아픈 기억이 됐을 것이다. 보험업계에서는 보험 부채를 시가로 평가하는 새로운 회계기준인 IFRS17 적용이 난제로 꼽혔다. 금융권 전체적으로는 핀테크의 도전이 시작되면서 가슴이 두근거렸고, 성과제 도입을 놓고 노사 간 대립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금융권이 전체적으로 뒤흔들려 금융시장이 불안감에 휩싸일 정도는 아니었다.
기업 부실의 여파가 시중은행으로 확산되지 않았고, 핀테크의 도전도 피부로 느낄 만큼 현실화되지 않았다.

지난 2015년 말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거친 개혁'을 얘기할 때까지만 해도 2016년은 정말 거친 한 해가 될 줄 알았다. 당시 임 위원장은 "지금까지 개혁은 착한 개혁이었다"며 "내년에는 반대의 목소리도 수용하고, 때론 그것을 뛰어넘기도 하고 설득해야 할 사람들은 설득하는 '거친 개혁'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성과제 도입 등 일부 거친 개혁이 시도됐지만 최순실 게이트라는 초대형 이슈에 파묻혔다.

가장 큰 위협이었던 초저금리가 금융권에 끼친 영향도 우려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초저금리에 따른 예대마진 축소로 은행권이 실적부진에 시달리고 보험업계는 역마진에 짓눌릴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금융지주사 중 가장 먼저 지난해 실적을 발표한 하나금융지주는 연결기준 순이익이 1조3451억원으로 전년 대비 47.9% 증가했다. 다음달 초부터 본격적으로 실적이 발표되는 다른 금융회사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 3.4분기까지 KB금융지주의 순이익은 1조689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 증가했고, 우리은행의 경우 지난 3.4분기 누적 순이익이 1조1059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순이익 1조590억원을 이미 넘어섰다. 은행 수익의 대표적 지표인 예대마진 축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시장이 활황세를 보이며 개인대출이 급증, 박리다매(薄利多賣) 현상이 나타난 덕분이다. 삼성화재가 지난 3.4분기까지 순이익 7556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6.5% 증가하는 등 손해보험사의 실적도 대부분 개선됐다. 경기부진 속에서 금융회사들만 실적잔치라는 질시 어린 평가까지 나온다.

그래서인지 올해 금융회사의 신년사 등에서 경각심을 높이는 목소리가 약해졌다. 상황을 나쁘게 판단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위기는 예고하고 찾아오지 않는다. 거대해진 가계부채 속 금리상승, 부동산경기 침체, 인터넷전문은행 출범 등 기존 금융권을 위협하는 변수는 올해도 적지 않다.
여름에 화로를, 겨울에는 부채를 미리 준비하는 정신으로 좋을 때 방비를 더욱 철저히 하는 자세가 필요할 때다.

yongmin@fnnews.com 김용민 금융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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