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뒤 대학 강연회에서 박 교수를 다시 만났다. 역시 통일이 주제였다. 그는 2013년 '선진통일전략'이라는 책을 냈다. 이 책엔 '박세일의 통일강국론'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을 세운 그에게 통일은 필생의 꿈이었다.
그러다 지난달 그의 부음을 들었다. 아프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연세대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찾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지난 2005년 그는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정책위의장 시절 세종시 이전 문제로 당시 박근혜 대표와 갈등을 빚다 의원직을 버렸다. 그 뒤 이명박정부에서 총리감으로 몇 번 물망에 오르긴 했으나 경륜을 펴진 못했다.
박 교수가 남긴 유작 '지도자의 길'이 화제에 올랐다. 그는 지도자가 갖춰야 할 4가지 덕목으로 △애민(愛民)과 수기(修己) △비전과 방략(方略) △구현(求賢)과 선청(善聽) △후사(後史)와 회향(回向)을 꼽았다. 그는 "아무나 지도자의 위치를 탐해선 안 된다"며 "치열한 준비도 없이, 고민도 없이 나서는 것은 역사와 국민에 대단히 무례한 일이다. 아니 죄악이다"라고 썼다.
과거 임금이 될 자는 경연(經筵)을 통해 통치술을 배웠다. 지금은 유권자들이 지도자를 뽑는다. 인기만 좋으면 불쑥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일단 뽑히면 곧장 통치한다. 따로 제왕학 코스를 밟는 것도 아니다. 곰곰 따져보면 참 위험하다.
지금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그냥 돈을 주겠다는 사람도 있고, 임금을 왕창 올리겠다는 사람도 있다. 너도나도 표를 달라고 아우성이다. 박 교수가 이들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대권을 꿈꾸는 자들은 고 박세일 교수의 유작부터 읽어보길 권한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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