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스태그플레이션이 온다고?

저물가 터널 빠져나오는 중인데 고물가 걱정은 너무 나간 얘기
과도한 우려는 경제에 보탬 안돼

습관적으로 과격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세상의 관심을 끄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제 주체들의 심리적 안정을 해치기 때문이다. 요즘 일각에서 제기하는 스태그플레이션 논란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어느 민간경제연구원이 최근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유가 인상 등으로 저성장-저물가 시대가 마감되고 저성장-고물가 기조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실도 물가, 실업률, 성장률 등에 대한 체감지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표명하는 보고서를 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원조는 영국이다. 1960년의 영국 경제는 소비자물가 상승률 1%에 실업률 1.7%로 모범적인 모습이었다. 이후 물가와 실업률이 동반상승하기 시작한다. 원인은 과다한 복지와 강성 노조가 맞물린 영국병 때문이었다. 당시 국영기업들은 막대한 적자를 내면서도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여 임금을 계속 올렸다. 오른 임금은 제품 가격에 떠넘겨졌다. 또한 과도한 복지 시스템이 근로의욕과 생산성을 감퇴시켰다. 1973~1979년 노동생산성은 연평균 1.1% 증가했으나 임금은 연평균 19.4%씩 올랐다. 임금이 생산성보다 18배나 빠른 속도로 오른 것이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1960년과 비교해 실업률은 3배로 올랐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무려 15배나 높아졌다.

스태그플레이션은 불황 속에 물가상승이 장기간 지속되는 현상이다. 영국의 정치가 이아인 맥클레오드(Iain Macleod)는 1964년 의회 발언을 통해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스태그네이션(stagnation, 경기침체)과 인플레이션(Inflation, 물가상승)의 합성어인 이 말은 처음에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다 1970년대 들어 두 번의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의 확산과 함께 세계적인 화두로 등장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을 인체의 질병에 비유하면 장기간의 입원치료를 요하는 중병에 해당한다. 보통은 경기침체가 진행되면 수요가 줄어 인플레이션이 금방 꼬리를 내리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이 같은 자율조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스태그플레이션이 그런 경우로서 일단 그 함정에 빠지면 경제는 거의 거덜이 난다고 봐야 한다. 경제를 만신창이로 만들어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치욕을 안겨 주었던 1970년대 영국의 경험이 이를 잘 말해준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도 소비자물가 압력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각의 스태그플레이션 위험 경고는 진도가 너무 나간 것이 아닌가 싶다. 계란 등 일부 농축수산물 값이 폭등해 밥상물가를 위협하고 있지만 이는 계절적, 돌발적 요인으로 봐야 한다. 유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물가는 적어도 올 하반기까지는 상승률이 1%대 중반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은이 예상하는 올해의 물가상승률도 1.8%로 중기안정목표치(2%)보다 낮다. 우리 경제는 지금 저물가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는 중이다.
물가가 정상궤도로 진입하는 단계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경제의 향후 진로에 대해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미리 대비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지나친 비관론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해까지 디플레가 온다고 하더니 느닷없이 스태그플레이션이 온다 하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