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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로봇세

이재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2.20 16:47

수정 2017.02.20 16:47

"미래의 공장에는 직원이 사람 한 명과 개 한 마리뿐일 것이다. 개는 사람이 기계를 못 만지게 감시하기 위해, 사람은 그 개에 먹이를 주기 위해 필요하다."

경영의 구루인 워런 베니스 전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가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무척 섬뜩하다. 하기야 인공지능(AI)을 장착한 로봇은 인간의 수십배에 달하는 생산성을 자랑하며 24시간 열심히, 정확하게 일한다. 파업도 않고 돈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사람은 쫓겨날밖에 없다.
이 때문에 로봇에 밀려 실업자로 전락한 인간을 지원하자는 뜻에서 기본소득제 논의가 최근 활발해졌다. 그리고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로봇세가 거론된다.

로봇세 논쟁은 지난해부터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달아올랐다. 유럽의회는 지난 17일 로봇세 도입을 반대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유럽의회는 지난달 로봇에 '전자 인간'이라는 법적 지위를 부과하는 '로봇시민법' 제정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로봇에 '인격'을 부여해 향후 소득세를 과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둔 셈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도 최근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로봇의 노동에도 세금을 매겨야 한다"며 논쟁에 뛰어들었다. 로봇세 문제는 오는 4월 프랑스 대선의 주요 이슈이기도 하다. 집권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 후보가 보편적 기본소득과 로봇세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국내에서는 이광형 카이스트 교수가 로봇세 옹호론자다. 찬성만큼이나 반대 목소리도 크다. 국제로봇협회(IFR)는 로봇세가 기술 혁신를 가로 막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업들이 로봇세가 도입되지 않은 나라로 공장을 옮겨 정책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많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상황은 19세기 산업혁명기를 떠올리게 한다. 영국은 자동차 발명에 마부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동차 운행을 규제하는 '적기 조례(Red Flag Act)'를 시행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영국은 오히려 자동차산업의 주도권을 잃고 마부들도 줄줄이 일자리를 잃었다.
시대적 대세를 규제로 막을 수는 없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AI 발전으로 일자리를 잃은 '잉여 인간' 수십억명이 발생한다고 했다.
세금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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