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인구소멸'의 시대, 정책철학 변화가 절실하다

장민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2.20 17:24

수정 2017.02.20 18:08

[기자수첩] '인구소멸'의 시대, 정책철학 변화가 절실하다

1년 전 이맘 때 정부 경제부처 A 과장과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일이다. 정부의 경제정책에 관한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 받으며,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무렵 고질적인 저출산 문제 해법을 묻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전혀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A 과장은 "사실 우리나라 같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인구 5000만명도 많은 것 아니냐"며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나름대로의 이유인 즉슨 "지금도 웬만한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할수록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 여지가 많다"는 것이었다. 소득의 근간인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인구 증가는 외려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도 했다.
뒤이어 그가 '사견을 전제'로 밝힌 결론은 이랬다. "적정인구는 3000만명~4000만명대 수준이다."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2015년 기준)은 1.2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최하위다. 이 속도로 가다간 2050년에는 일본에(40.1%) 이어 전세계 2위 인구 고령화 국가가 될 것이란 우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전체 인구 중 3분의 1이 65세 이상 노인이 된다는 얘기다. 인구가 감소하면 소비여력이 줄어 재정이 악화되고 부양 부담이 가중된다는 것이 그동안의 저출산 담론 아니었던가. 저출산 대책을 포함한 경제 정책을 담당하는 정부 관계자의 인식치곤 다소 의외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그의 발언을 곱씹어보니 일면 일리있는 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출산은 사회 구조적 요인이 응집된 결과다. 그 중에서도 소득 요인이 무엇보다 크다. 구직자는 넘쳐나는데 반해 좋은 일자리는 적다. 물가는 가파르게 오르지만 임금은 몇 년째 제자리만 반복한다. 언제든 실직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만 안고 산다. 한 치 앞이 캄캄한 상황에서 무작정 아이만 낳으라고 강요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스스로도 그동안 '경제학적 효용'에 파묻혀 저출산 문제를 바라봤던 과거를 되돌아봤다. 미국의 언론인이자 대학교수인 앨런 와이즈먼은 베스트셀러 저서 '인구쇼크'에서 일본 마쓰타니 아키히코 교수의 연구를 인용해 "인구가 줄어 국가의 국내총생산(GDP)가 감소하더라도 1인당 소득은 줄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인구가 줄어든 만큼 노동가치는 올라간다. 즉, 임금 상승 등 노동자 권리가 증진돼 개인의 삶의 질은 오히려 올라간다는 것이다. 소득이 늘어나면 그만큼 소비여력도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다는 요지다.

정부는 지난 10년간 저출산 정책에만 8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액수를 쏟아부었지만 소득은 없었다. 구조적 요인을 외면한 채 육아휴직 확대, 난임부부 지원 등 단기책에 급급한 결과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이 먼저다. 적정인구 실태를 파악해 삶의 질을 높이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획기적인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언제까지 정부의 말이 공허한 메아리로만 들리게 할건가.

mkchang@fnnews.com 장민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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