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극우의 미래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2.26 17:05

수정 2017.02.26 17:05

[데스크 칼럼] 극우의 미래

중동 출신 난민들을 유럽에서 직접 본 건 그리스 아테네 시청사 뒤편 오모니아 광장에서였던 거 같다. 그때가 2012년 6월. 남유럽 재정위기 취재로 잠시 들렀던 차였다. 당시 광장 귀퉁이 슈퍼마켓 주인 말에 따르면 이들 불법체류 난민들은 대부분 중동에서 여기까지 산을 넘고 국경을 지나 걸어서 왔으며 다음 행선지는 이탈리아라는 것이었다. 난민들은 지중해를 건너는 화물여객선 트럭 밑에 숨어 밀항을 시도하는데, 불행히도 그 트럭에 깔려 죽는 일이 다반사라 했던 기억이 난다.

돌아보면 유럽 난민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한 게 그 무렵부터 아니었나 싶다. 2011년 튀니지에서 촉발된 '아랍의 봄' 이후 중동.아랍계 난민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지금도 유럽 각국에선 하루에만 3000명, 4000명의 난민은 보따리를 이고 지고 국경을 넘고 있다. 이로 인한 유럽내 변화는 굉장하다. 치명적인 건 평온했던 일상에 공포가 침투했다는 사실이다. 유럽에서 20년 이상 살고 있는 지인의 최근 이야기는 이를 뒷받침한다. "매일 타고다니던 지하철에서 젊은 중동 망명객 무리들과 마주하는 삶이 일상이 됐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면 이들의 폭행, 강탈 뉴스가 쏟아진다. 삶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난민 유입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집단 불안감. 이를 비즈니스 밑천으로 삼고 있는 세력이 유럽 극우들이다. 올해 줄줄이 대선.총선을 치르는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곳곳에서 이 집단은 창궐하고 있다. 난민, 이민자에 대한 거부감과 경멸이 커지는 것과 비례해 극우의 힘은 세진다. 이들의 추종세력은 의무교육도 제대로 안받은 하류인생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들의 이기적인 슬로건이 실은 그다지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하는 중간계층까지 가세하면서 판도가 달라지고 있다. 놀라운 점은 이들의 무리가 의외로 많고 세를 불리는 속도도 빠르다는 사실이다.

지난해만 해도 프랑스 극우 국민전선 당수 르펜을 당선권으로 본 이는 거의 없었지만 이제 르펜은 유력 주자다. 물론 2차 결선에서 공화당 피용, 무소속 마크롱에게 질 것이라는 관측이 최근 우세해지고 있다고는 하나 이 역시 뒤집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르펜 당선이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이는 브렉시트와는 차원이 다른 충격과 공포다. 유럽 붕괴는 시간 문제다. 유로존 채권·금융시장엔 이런 우려가 벌써 반영되고 있다. 세계는 바야흐로 '각국 우선' 깃발 경쟁에 들어갈 것이다. 극우정권은 난민, 이민자 차별로 우선 승부를 낼 게 뻔하다. 입국금지, 강제추방 칼을 빼든 미국 트럼프와 다르지 않다. 지지자들은 이내 열광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열광이 결국 마주하게 될 결말이다.
과연 이전보다 더 많은 일자리, 더 강한 복지, 더 나은 미래가 그들 눈앞에 펼쳐지게 될 것인가.

화가가 꿈이었지만 서른살까지 무직이었고, 평생 직장을 다녀본 적 없었던 독일 히틀러가 가장 잘한 것이 대중연설이었다. 인종에 등급까지 매겼던 그의 사상 핵심도 요약해보면 '독일 우선'이다.
그는 베를린 함락 직전 만든 '정치적 유언장' 첫줄에 "지난 30년 나의 생각, 행동, 생활 모두를 움직여온 것은 독일 국민에 대한 사랑과 충성뿐이었다"고 썼다. 극우의 미래, 우리가 봤던 그 과거와 다를 것이라고 누가 자신할 수 있을까.

jins@fnnews.com 최진숙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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