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피플일반

"생전처음 삽 잡아.. 강추위에도 이마엔 비지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2.27 19:11

수정 2017.02.27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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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른채 낯선 사람들과 떠나는 봉사활동 '카카오 어떤 버스' 참가기
집결 시간.장소만 알려줘.. 처음만난 18명 금방 친해져
복지기관 잡초 정리 도와.. 고맙다는 복지사말에 뿌듯해
카카오 어떤버스 참가자들이 지난 11일 경기도 성남시 율동공원에서 버려진 잡초를 정리하고 있다.
카카오 어떤버스 참가자들이 지난 11일 경기도 성남시 율동공원에서 버려진 잡초를 정리하고 있다.

"2월 11일 오전 10시30분, 서울역 2번 출구, 참가비 만원."

2월 초, 카카오에서 '2017년 어떤버스 2월호-뚜벅이편'에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낯선 사람들과 떠나는 봉사활동을 표방하는 '어떤버스'답게 집결시간과 장소 외에는 어떤 정보도 없었다. 하지만 며칠간 안내를 보고 또 보고 가슴이 설�다. 마치 신제품의 비밀이 가득 담긴 애플의 간담회 초대장을 받은 기분이랄까. 그도 그럴 것이 이 특별한 버스에 오르겠다고 신청한 사람은 무려 2590명이지만 선정된 사람들은 단 125명에 불과했다.


11일 집결장소인 서울역에 도착해서도 떨림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힌트는 봤지만 뭐가 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을 가야 할지,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 곳을 가야 할지 고민이 됐다. 약속한 10시30분이 되었고 카운트다운과 함께 사람들이 각각이 생각해 놓은 힌트 앞에 가서 줄을 섰다. 내가 줄을 선 곳은 춤을 추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었는데, 봉사활동 장소가 분당의 율동공원 인근이라고 했다. 춤추는 사람이 율동공원을 의미할 줄이야.

출발하기 전에 이날 함께 봉사활동을 진행할 18명의 사람을 처음으로 만났다. 모두 초면이었지만 생각보다 어색하지는 않았다.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만나 한시간 남짓한 이동시간 동안 어떤버스에 참여하게 된 이야기, 서로가 최근 갖고 있는 고민을 나누며 가까워질 수 있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율동공원 인근의 복지기관을 방문해 겨우내 방치돼버린 잡초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도시에서만 자란 나는 생전 처음으로 낫과 삽, 갈퀴를 잡게 되었다. 대학을 다니며 했던 봉사들은 모두 따뜻한 실내에서 하는 사무보조 같은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봉사활동의 기쁨보다는 취업을 위해 일을 한다는 느낌을 받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이날 하루종일 밖에서 추위와 싸움하며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이 진짜 봉사활동의 의미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박소영
박소영

일이 쉽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꽁꽁 얼어붙은 땅은 쉽게 갈 수 없었고, 계획했던 외부시설 전등 설치도 날씨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더 열심히 도와드리고 싶었지만 이내 날이 저물어 계획한 일을 다할 수가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일을 놓지 못하는 우리를 보며 담당 복지사님은 연신 웃는 모습으로 "정말 필요한 일을 해주셨고 이것만으로도 너무 고맙다"고 했다.

이날 18명의 어떤버스 봉사단이 와주지 않았다면 직원 4명이 일주일 내내 일을 했어야 끝낼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복지사님의 말이 추위를 한번에 녹여냈다.
지금까지 경험한 봉사활동에서 느껴지는 사무적인 느낌과는 다른 뿌듯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날 낯선 사람 125명이 만나 힌트 하나만 보고 어떤 곳으로 봉사활동을 떠났다가, 이내 친구가 되고 언니, 동생이 되었다.
짧은 시간 이뤄진 봉사활동이었지만 모두에게 남겨진 여운은 길었고, 우리는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이 어떤버스와 함께하며 이 가슴 벅찬 순간을 세상과 나눴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3학년 박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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