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삼성 미래전략실의 어느 직원에게

김경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3.02 17:18

수정 2017.03.02 17:18

[기자수첩] 삼성 미래전략실의 어느 직원에게

2일 삼성그룹 기자실에는 '그룹 기자실 폐쇄 안내'라는 공문이 붙었다. "3월 3일 금, 개인 소지품 모두 정리 바랍니다." 58년 역사의 미전실은 이제 완전히 과거로 사라졌다. 직원들도 짐을 쌌다.

그룹 기자실 폐쇄 안내문을 보고 있자니 2년 전 그룹으로 발령된 한 삼성 직원이 문득 떠올랐다. 그를 만난 것은 지난 2015년 말 삼성그룹 기자단 송년회에서였다.


그는 만남에서 "김 기자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이전 부서에서 안면을 텄던 직원이 미전실로 옮겨온 것이다.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 많은 사람 가운데 또 출입처에서 인연을 맺게 되니 무척 반가웠다.

축하의 말을 건넸다. 미전실 발령은 그룹이 능력을 인정한 엘리트이며 앞으로 출세길이 열렸다는 의미이기도 해서다. 당시 그는 "고생길이 열렸습니다"며 너스레를 떨면서도 부딪는 소주잔에는 힘이 넘쳤다. 시간이 흘러 며칠 전 그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도 그의 말투에서는 '아쉽다' '불안하다' 같은 감정은 읽히지 않았다. "해체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면서도 오히려 '당당하다' '씩씩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도 우리 같은 월급쟁이인데 어찌 속이 안 쓰릴까. 1년 전 그는 스스로 뿌듯했을 것이고, 자랑스러운 한 가정의 가장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앞으로 어떻게 되느냐, 괜찮으냐"는 주변의 걱정을 수도 없이 받을 것이다.

가장 불안한 것은 본인일 것이다. 그룹의 미래를 짜고 큰 그림을 그렸던 미전실 직원들은 정작 한 치 앞의 자기 미래도 알지 못하는 처지다. '최순실 게이트'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루되면서 일각에서 주장하는 '부역자'라는 정치적 모욕감까지 견뎌야 한다.

변명하자면, 그들은 열심히 일한 회사원이다. 한 미전실 직원은 밤낮없이 일한 대가로 젊은 나이에 고치기 힘든 지병까지 얻었다고 푸념한다.

그룹의 촉망받는 인재에서 더러는 졸지에 '굴러온 돌'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지난해 계열사 발령으로 핵심인사에서 멀어졌다던 어느 고위급 임원은 1년이 지난 지금 최고의 수혜층이었다며 다시 회자되고 있다. 인생사 새옹지마가 딱 맞는 말이다.
적을 옮긴 미전실 직원들의 미래에 건승을 빈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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