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혁의 눈] 고스펙 여성이 눈 낮추면 출산율 올라가나?

이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3.19 09:00

수정 2017.05.16 13:49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편집자주] 하루에도 수십 만 개의 기사들이 쏟아지고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리고 가려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간혹 중요하지만 우리가 못 보고 지나치는 사회적인 문제들도 많습니다. [이혁의 눈]에서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사회 문제를 재조명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눈’이 되어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펴보겠습니다.

저출산 대책에 80조 원을 투자하고도 허탕만 치는 나라, 지난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출산율이 낮은 나라, 60년간 17만 명의 아기를 수출하는 나라는 어디일까요?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우리나라의 출생아 수는 40만6300만 명으로 1970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역대 최저 수준이었습니다.
해마다 최저 기록을 경신하는 출산율이 발표 될 때 마다 여성들은 애 낳는 기계 혹은 가축 취급까지 당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지난해 12월에는 행정자치부(이하 행자부)에서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공개해 논란이 있었습니다. 행자부는 가임기 여성들이 어디에 얼마나 거주하는지 지역별로 공개하고 인구수에 따라 순위까지 매겼습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홈피를 하루 만에 비공개 처리하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출산지도 파문’ 두 달 만에 또 다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지난달 24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연)의 보고서(‘결혼시장 측면에서 살펴본 연령계층별 결혼결정요인 분석’, 원종욱 선임연구위원) 내용이 문제가 됐기 때문입니다.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혼인율 하락이 출산율 하락에 크게 기여하며 혼인율을 높이는 것이 출산율 제고에 효과적”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 불필요한 휴학, 연수, 자격증 취득 등 채용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지하는 것만으로도 효과 있을 것”이라며 “불필요한 스펙 쌓기로 시간과 돈을 허비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학력과 소득수준이 높은 고스펙 여성들 때문에 결혼시장 진입이 늦어지고, 비혼, 만혼, 등 저출산을 심화시키기 때문에 하향 선택을 권장하는 대책입니다. 즉, 고스펙 여성들이 결혼을 안 하니 스펙을 줄여 결혼을 시키자는 겁니다. 더군다나 소득과 학력수준이 낮은 남성과 짝을 지어주면 혼인율이 높아 질 수 있다고 황당한 분석까지 했습니다.

원종욱 선임연구위원은 “여성의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상승하면서 ‘하향 선택’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관습 또는 규범을 바꿀 수 있는 문화 콘텐츠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며 “이는 단순한 홍보가 아닌 대중에게 무해한 음모수준으로 은밀히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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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내용이 발표된 이후 여성들의 반발은 심해졌고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보사연 ‘연구원에 바란다’ 코너에는 700건이 넘는 항의 글까지 쏟아졌습니다. 논란이 거듭되자 보사연 측은 공지사항을 올리며 원종욱 선임연구위원을 보직해임 시켰습니다. 해당 연구위원은 사과 글까지 올렸지만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고학력 여성들도 걱정 없이 결혼과 출산을 할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 되어야지 고학력 여성 양산을 막아 ‘결혼이나 하게 만들자’는 건 어디에서 나온 발상일까요? 결국, 여성들에게 스펙 쌓지 말고 결혼해서 생명 잉태에만 집중하라는 논리입니다. 여성은 고학력이건 저학력이건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이 있어야 합니다. 왜 남성이나 국가에 의해 '출산'을 강요받아야 할까요?

출산에 대한 우려가 커질수록 여성의 몸을 출산을 위한 도구로만 인식하는 시선이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 결과를 논하기 전에 최소한의 복지와 안정을 제공해야 하지 않을까요? 출산율이 낮아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이를 낳으면 한 쪽은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하고, 아이를 기를 때 막대한 자금과 희생이 강요되기 때문에 2030 세대들은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저출산 문제를 여성의 탓으로 돌려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아 논란을 키우지 말고 함께 문제를 고민하고 헤쳐 나갈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존재 자체로 고귀합니다.
차별 없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hyuk7179@fnnews.com 이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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