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문명충돌, 제대로 읽지 못하면 또 죽는다

김관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3.26 16:38

수정 2017.03.31 15:25

[데스크 칼럼] 문명충돌, 제대로 읽지 못하면 또 죽는다

연일 계속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 서서히 드러나는 중국의 패권주의…. 세계의 경찰국가로 복귀하려는 미국의 일방주의….

최근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숨가쁘게 벌어지는 국제정세의 모습이다. 일견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이 속에는 문명의 새로운 충돌이라는 함수가 숨어 있다. '문명의 충돌'이란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인 새뮤얼 헌팅턴이 처음 제시한 이론으로, 그는 국제정치의 가장 심각한 분쟁을 "문명들 간의 충돌"로 정의했다. 1차적으로 문명권을 기독교권, 이슬람권, 유교권, 불교권, 힌두교권, 정교권 등 종교로 구분했다. 이어 또 다른 충돌의 축으로 기독교 중심의 서구 문명과 이슬람교 중심의 범중동권 문명, 유교 중심의 아시아 문명으로 봤다.

최근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갈등은 바로 기독교 중심의 서구 문명과 유교 중심의 아시아 문명의 충돌이다.
서구 문명의 중심은 미국이고 유교 문명의 중심은 중국이다. 중국은 수십년간 축적한 힘을 바탕으로 아시아는 물론 세계시장에서 패권국가를 자처하고 있다. 미국은 과거 경찰국가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강력한 힘의 외교를 펼치고 있다. 한반도는 이 두 문명이 충돌하는 최접점이다.

그런데 이 접점에서 변화가 생겼다. 그 진원지는 북한이다.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은 지난 수년간 미사일 발사 실험을 통해 남북 간 힘과 견제의 균형을 깨버렸다. 더 나아가 서구문명의 축인 미국까지 위협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선 한반도에서의 이 같은 힘의 불균형도 불편하지만 자국 본토까지 미사일로 타격하겠다는 북한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과연 미국은 이를 어떻게 해결할까. 북한 핵시설을 비롯한 김정은 거처를 선제타격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하지만 이는 전면전으로 번질 수 있어 미국의 중요 동맹국인 우리나라와 일본에 엄청난 타격을 입히기 때문에 오바마 정부 때부터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북한의 미사일 위협은 어느새 미국 본토까지 와 버렸다. 하지만 미국 백악관의 주인은 이제 도널드 트럼프다. 트럼프는 모든 경우의 수를 택할 때 미국을 우선시하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다.

"일본은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다. 한국은 (물론) 중요한 파트너다." 며칠 전 아시아 순방길에 오른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이 같은 발언에 60여년 미국의 맹방을 자처하던 우리나라가 발칵 뒤집어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틸러슨을 "외교 초짜"로까지 폄하했다. 과연 그럴까. 트럼프의 입으로 통하는 그가 날린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외교적 발언을 초짜의 실수로 봐야 할까. 우리의 착각이다. 이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좌고우면'하는 우리나라 정치권과 국민들에게 던진 아주 강력한 경고다.

수십년째 진행된 중국과의 문명충돌에서 미국의 극동아시아 1차 마지노선은 한반도이고 최종 마지노선은 일본이다. 이전에는 그랬다. 그러나 이번 틸러슨의 발언은 1차 마지노선인 한반도가 전쟁터가 되더라도 최종 마지노선인 일본이 건재할 수 있다면 북한을 선제타격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 것이다.
이는 곧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1950년 1월 미국의 국무장관이던 애치슨이 극동아시아 방어선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한 '애치슨 라인'은 그해 6.25 전쟁을 불러왔다.
새로운 에치슨 라인을 수용할 것인지, 이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건설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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