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세금 깎아줄게 결혼할래?

저출산 심각성 이해하지만 유치한 발상.. 실효성도 의문
결혼 가치관부터 재정립해야

정부가 젊은이들에게 결혼하면 세금을 깎아주겠다고 한다. 혼인세액공제 얘기다. 오죽 다급했으면 이런 정책까지 내놓았을까. 인구문제의 심각성을 감안하면 정부의 입장이 이해는 간다. 하지만 뒷맛이 영 씁쓸하다.

20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1996년만 해도 43만쌍이 결혼하고 69만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지난해에는 결혼이 28만건, 출생아수는 40만명에 불과했다. 20년 사이에 혼인건수가 35%, 출생아수는 42%나 감소했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하고, 결혼하더라도 출산을 기피한 결과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1.17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는 등 인구절벽이 시작된다. 일본은 1996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기 시작했다. 인구감소는 경제에는 독약이나 마찬가지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정부가 고심 끝에 혼인세액공제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연봉 7000만원 이하인 근로자가 결혼하면 외벌이는 연간 50만원, 맞벌이는 100만원의 세금을 깎아주는 내용이다. 결혼 유인책으로 세금을 활용하는 발상법이 이채롭다. 결혼이 세금과 관계를 맺은 것은 역사가 길다. 중세시대에는 여자가 이웃 장원의 남자 농노와 결혼해 이주하려면 영주에게 결혼세를 내야 했다. 결혼으로 생기는 노동력 결손을 세금으로 보충한 것이다. 근세 이후에도 결혼세라는 명목의 세금은 사라졌지만 '현대판 결혼세'는 여전히 상존한다. 금융, 부동산 등 부부의 자산소득을 합산해 세금을 물리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부부합산 과세를 채택하면 누진세율이 적용돼 세금부담이 미혼일 때보다 무거워진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선거 때마다 결혼세 감면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등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후보 시절 결혼세 전면 폐지 공약을 발표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도 공화당은 의회에서 10년간 2920억달러를 깎아주는 결혼세 감면법안을 통과시켰으나 클린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시행되지는 못했다. 민주당 정부가 재정흑자를 헐어 부유층에게 선물을 안겨주는 세제개편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현대판 결혼세가 있었다. 노무현정부 시절 종합부동산세에 세대별 합산과세를 했다. 그러나 2008년 헌법재판소가 이 조항을 위헌으로 판결한 이후 개인별 합산과세로 전환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가 지난주 정부가 제출한 혼인세액공제 관련 법안을 심의했으나 보류키로 했다. 실효성에 대한 반론이 많았기 때문이다. 애당초 결혼할 의사가 없는데도 세금 몇 푼에 생각을 바꿔 결혼하겠다고 나설 사람이 있을지 생각해볼 일이다.

나는 실효성 여부를 떠나 결혼을 세금과 결부시키는 것 자체가 못마땅하다. 그런 발상은 결혼의 본질적 의미를 퇴색시킬 뿐이다. 결혼은 남녀가 사랑과 믿음으로 만나 함께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남편으로서, 또는 아내로서 가정을 잘 가꿔나갈 책임과 의무를 부여받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점점 사랑 대신 돈, 가정 대신 개인, 책임 대신 권리를 앞세우는 가치관에 매몰돼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극도의 경쟁을 피하기 어려운 초경쟁 사회의 한국적 현실이 가치 상실을 야기하고 있다. "세금 깎아줄게 결혼할래?" 정부가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묻는 것도 결혼에 대한 몰가치의 반영이 아닐까.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