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차장칼럼] 주가는 그냥 오르지 않는다

안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3.28 16:57

수정 2017.03.28 22:32

[차장칼럼] 주가는 그냥 오르지 않는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한 대기업 임원과의 식사 자리에서 최근 증권시장 돌아가는 얘기가 화두로 올랐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삼성전자나, 잠잠하다 갑자기 들썩이는 현대차 얘기가 나오면서 자연스레 그 임원이 근무하는 회사로 주제가 옮겨갔다. 그곳은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대기업이었는데, 유독 주가는 죽을 쑤는 수준이었다. 실적이 나쁜 것도 아닌데 딱히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 만한 그 무엇인가가 없었다.

회사 직원들 중에서도 오래전 주식을 사둔 사람들이 제법 있다는데, 주가에 관심 두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자존감이 바닥을 뚫고 들어간 상태였다.

"회사가 주가에 신경 좀 써야 하지 않아요." 큰 기대 없이 던진 질문에 그 임원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안 오르는 주가를 어떻게 올리겠어요. 회사가 사업 열심히 하면 주가는 알아서 오르겠지요."

의외의 답변이었다. 주가관리는 상장사의 의무이고 투자자와의 약속인데, 알아서 주가가 오를 것이라니. 주식시장의 메커니즘을 생각하면 이건 직무유기나 다름 없는 얘기다. 회사가 상장하는 이유는 주식을 팔아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끌어쓰기 위해서다. 투자자들은 그 주식의 값이 올라야 되팔아 수익을 남길 수 있다. 상장사는 당연히 투자자들의 기대에 부응할 의무가 있다.

그 임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전체 시장을 보면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나이가 올해로 예순한 살이다. 이미 환갑이 넘었는데, 아직도 기업들 상당수가 주가는 그저 시장에 맡겨두면 되는 것쯤으로 치부하고 있다.

최근 주주총회 시즌이 지나갔다. 주총장에 의장으로 나선 고위 임원들의 단골 멘트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주식을 산 주주들의 주머니를 두둑이 불려주는 방법을 내놓겠다는 것인데, 딱히 이를 실행에 옮기는 회사는 많지 않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금방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으로 배당만 한 게 없다. 배당은 회사의 이익을 주주들에게 나눠주는 방법이다. 배당이 높은 주식은 주가도 오르니 주주들은 일석이조다. 불행히도 우리 기업들은 여기에 참 인색하다. 곳간에 쌀이 넘쳐나도 좀처럼 풀지 않는다.

해외증권사들이 매년 모간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지수에 편입된 상장사를 기준으로 나라별 주식시장의 배당수익률을 조사하는데, 우리나라는 항상 하위권이다. 올해 한국 주식시장의 배당수익률은 1.88% 수준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러시아나 중국보다 낮고 인도보다 쥐꼬리만큼 높다.


장하성 교수가 쓴 '한국 자본주의'를 보면 "한국 기업은 주가와 임원들의 보수가 연동되는 경우가 드물고, 경영진들이 주주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대표적으로 인사)을 우선 추구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주총장에서 늘 나오는 주주가치 제고, 좋은 얘기다.
다만 투자자들 중에 그 말이 진심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증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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