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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벚꽃? 봄꽃?

강문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3.28 16:57

수정 2017.03.28 16:57

어렸을 적 가족과 함께 창경궁 벚꽃놀이를 갔던 기억이 난다. 벚꽃이 진 뒤에 열리는 버찌를 따먹고 손과 입 주위가 시커멓게 물들었던 기억도 새롭다. 당시 창경원은 동물원도 인기였지만 봄이면 벚꽃놀이로 사람들이 북적였다.

벚꽃나무는 일본이 원산지로 알려졌다. 하지만 1900년대 초 제주도에 선교사로 온 프랑스인 신부가 한라산에서 왕벚나무를 발견한 뒤 한국이 자생지라는 설이 힘을 얻는다. 조선 효종 때 지금의 서울 우이동에 화살대 재료로 벚나무를 심었다는 기록도 있다.
실제 산림청과 미국 농무부가 일본 벚꽃나무의 DNA를 추적한 결과 제주 왕벚나무와 유전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꽃은 국화(菊花)다. 사쿠라(벚꽃.櫻)는 일본을 상징하지만 법적으로 정해진 국화(國花)는 없다. 일본인은 벚꽃을 지독히 사랑한다. 봉건시대에는 무사도의 상징으로 여겨져 '꽃은 사쿠라요, 사람은 사무라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대의명분을 위해 주저없이 죽음을 택하는 무사의 정신이 화려함을 뽐내다 한순간에 지는 사쿠라의 그것과 닮았기 때문이다. 식민지배 때 아픈 기억인 사쿠라는 군사정권 시절 '낮에는 야당, 밤엔 여당'으로 박쥐 같은 정치인을 꼬집는 용어로 쓰였다. 이때 사쿠라는 꽃이 아니라 바람잡이, 야바위꾼을 뜻한다.

해마다 15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미국 워싱턴 포토맥강 벚꽃축제는 올해로 105회째다. 우리에겐 아픈 사연이 있다. 1912년 도쿄시장이 일제의 조선 지배를 사실상 인정해준 월리엄 태프트 대통령의 부인에게 감사의 표시로 벚꽃나무를 선물한 데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한때 진주만전쟁으로 베어질 운명이었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이 "벚꽃 원산지는 한국"이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엊그제 홍문표 바른정당 의원이 벚꽃축제 명칭을 봄꽃 축제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일제 식민통치의 잔재일 뿐 아니라 일본 정부가 과거사에 대해 진정한 반성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오는 31일 제주와 경주, 4월 1일 진해를 시작으로 전국에서 벚꽃축제가 열린다. 벚꽃 원산지가 제주로 밝혀진 이상 축제 이름을 굳이 바꿀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당당하게 이 사실을 널리 알리는 게 낫지 않을까.

mskang@fnnews.com 강문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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