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혼밥 권하는 사회

이환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3.30 17:31

수정 2017.03.30 17:31

[기자수첩] 혼밥 권하는 사회

자판기에 돈을 넣고 메뉴를 고른 뒤 도서관 책상처럼 칸막이가 있는 식탁에 앉는다. 그리고는 라면 고명 종류, 면의 붇기 정도 등을 체크한 쪽지를 식탁 앞에 쳐진 천막 아래로 밀어넣는다. 요리사는 천막 뒤에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5분 뒤에 주문한 라면이 나온다. 지난 2009년 일본 도쿄의 한 라멘집에서 겪은 인상적인 '혼밥(혼자 먹는 밥)' 경험이다. 그런데도 여행이 주는 낯섦과 색다름으로 혼밥이 주는 적적함과 허전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약 7년이 지난 현재의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혼밥, 혼술(혼자 마시는 술), 혼여(혼자 떠나는 여행)가 대세가 됐다.
국민 4명 중 1명 이상이 1인가구인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백화점, 대형마트,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1인가구를 위한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무엇보다 과거처럼 혼자 밥 먹을 때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사회가 변하면서 혼밥이 흔해졌고,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혼밥이 더 이상 부끄럽거나 불편한 일이 아니게 된 것은 좋다. 하지만 기업들이 물건을 더 팔기 위해 혼밥을 권하고, 혼밥을 필요 이상으로 조장하는 것 같아 불안한 느낌도 든다.

1960년대 밥은 허기진 배를 채우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밥은 육체의 배고픔을 면해주는 것 이상이다. 가족의 다른 말이 '식구(食口)'이고, "밥 한번 같이 먹자"가 인사가 된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밥벌이의 고단함에 대해 뛰어난 통찰을 보여준 작가 김훈도 그의 책 '라면을 끓이며'에서 "사람의 밥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굴러다닌다"며 "그래서 내 밥과 너의 밥이 뒤엉켜 있다"고 했다.

혼자 영화를 보면 영화에 더 집중할 수 있어 좋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혼밥 하면 음식에 더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혼밥이 더 맛있나? 난 아니다. 맛을 느끼는 것은 단순히 혀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훈 역시 "맛은 화학적 실체라기보다는 정서적 현상"이라고 했다.

1인가구 시대 혼밥은 편하다. 하지만 때론 불편함이 편함보다 낫다. '혼숙(混宿)'의 사전적 의미는 '남녀가 여럿이 한데 뒤섞이어 잠'이다.
혼자가 더 많아질수록 '혼밥'(혼자 먹는 밥)보다 '혼(混)밥(같이 먹는 밥)'이 더 중요하지 싶다. 혼영(혼자 보는 영화)'이 싫어서 작년에 못 본 '라라랜드'에 아쉬움은 남지만 후회하지 않는 이유다.
모르는 사람과 나란히 앉아서 멜로영화를 보는 일은 민망하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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