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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대기업 출연금은 ‘가이사의 것’?

조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4.02 17:06

수정 2017.04.02 17:06

[차장칼럼] 대기업 출연금은 ‘가이사의 것’?

인류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성경 속 마태복음에는 세금과 관련한 유명한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를 모함해오던 바리새인들은 어느 날 자기 제자들을 예수한테 보내 "세금을 하나님께 내는 게 옳으냐, 가이사(시저, 로마의 황제)에게 내는 게 옳으냐"고 물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에게만 헌물을 바쳤다. 따라서 예수가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라고 말할 경우 자신을 따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등을 돌리게 될 수 있었다. 반대로 하나님께 세금을 드리라고 말한다면 반정부 인사로 간주돼 로마 정부에 체포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질문은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예수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했다.
기독교에선 이를 세속의 권세, 즉 부패한 권력자의 요구라도 의무는 이행하되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이런 성경적 해석을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기업들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이권이 개입된 미르.K스포츠 재단(이하 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기업들은 하나같이 정부의 모금은 '준조세'로, 일종의 '보험' 차원에서 돈을 냈다며 억울해한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반대로 이 돈이 과연 정당한 것이었는지에 의문을 표하며 대가성이 있었다고 보고 삼성그룹 수뇌부를 기소한 뒤 남은 대기업 수사를 검찰에 넘겼다.

하지만 그간 법조계와 재계를 장시간 취재한 결과 기금의 정당성에 대해선 기업들이 출연금을 낼 수밖에 없는 현실적 고민에 직면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기업인들 상당수는 권력의 요구를 거절할 경우 국세청과 검찰 등 사정기관을 손에 쥔 정부의 합법적 '보복'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법률 전문가들 역시 정부가 독하게 마음먹고 세무조사라도 벌인다면 준법감시 시스템을 마련해 놓은 기업이라 해도 '탈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을 것이란 말로 기업이 권력의 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우회적으로 설명했다.

역대 정권이 대부분 기업들을 동원해 정부 역점사업을 추진해왔기 때문에 재단 출연금을 자연스럽게 '준조세'로 인식했다는 기업들의 항변은 그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기업들이 관례상 출연금을 '가이사의 것'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업들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싸늘한 게 현실이다. 결과론적으로 기업이 낸 출연금이 국정을 농단하는 도구로 악용됐다는 점에서 과연 기부금이 순수한 목적이었겠느냐는 의구심이 상당수 국민의 의식에 자리잡고 있다.
과거 정권과 유착해온 대기업들의 '원죄'가 이번 사태에서 무차별적 '반기업' 정서를 확산시키는 데 일조한 듯하다.

지난달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하면서 결정문에 "비밀리에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해 기업으로 하여금 재단법인에 출연하도록 한 행위는 해당 기업의 재산권 및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적시한 점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검찰 수사가 '기교사법(유무죄 판단을 미리 내려놓고 법리적 해석을 짜맞춤)'으로 평가받지 않기 위해서는 여론에 휩쓸려 자칫 간과하기 쉬운 소수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조상희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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