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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칼럼] 공공조달시장과 워치독

김원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4.16 17:11

수정 2017.04.16 17:11

[차관칼럼] 공공조달시장과 워치독

정부계약에서 가장 큰 난제는 '가격결정 과정'이다. 조달계약 물품은 시중에서 거래되지 않거나 시중 물품과 규격이 다른 경우가 많아 시장가격이 대부분 없다. 따라서 계약담당자는 업체가 제시한 견적가격, 원가계산가격, 유사물품 거래실례가격 등을 참고해 가격을 결정하기 마련이다. 이 와중에 사실상 기업이 제시한 자료를 하나하나 검증하는 데 한계가 있어 가격 부풀리기, 담합, 이중가격 설정 등 가격 관련 부당행위가 발생하고 있다.

걸리지만 않으면 정부 돈은 빼먹어도 된다는 부정적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조달청이 지난해 조달가격을 교란한 20여개 업체를 적발해 환수한 부당이득액이 45억원에 달한다.
미국 연방조달청(GSA)도 제품을 시중가격 대비 27% 정도 높게 공급한 업체에 대해 500만달러를 배상조치한 바 있다. 지난해 말 기업의 부도덕한 행위로 인한 조달가격의 신뢰 저하와 예산 누수를 막기 위해 조달청에 조사권을 부여하는 입법조치가 완료됐다. 조달청은 그 후속조치로 지난 2월 정부조직개편을 통해 가격조사 및 부당이득 환수를 전담하는 조달가격조사과를 신설했다.

가격조사업무 신설에 따라 기대도 있지만 일부에서는 정부가 가격결정체계에 개입해 비효율을 초래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조달청의 가격조사 업무는 가격책정에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계약체결과정 및 이후 이행과정에서 부당한 활동을 규율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불공정행위는 예방하되 정상적인 기업활동은 최대한 보장하는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할 생각이다. 조사방식에 있어서도 마구잡이 투망식 조사는 자제하고 현저히 부당행위가 의심되는 분야에만 정밀 타깃(pin point)하는 방식을 활용하겠다.

먼저 조달기업이 시장보다 높은 가격으로 공공부문 종합쇼핑몰인 나라장터에 제품을 계약.공급하거나 허위서류 제출 등의 방법으로 고가로 납품하는 행위를 집중 감시하겠다.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에서 거래되는 주요 품명에 대해서는 상시 모니터링을 통해 가격조정이 필요한 품목은 단가를 조정하고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즉시 현장조사도 병행하려고 한다. 조달가격신고센터를 설치해 가격 부풀리기, 우대가격 유지의무 위반 등에 대해 제보도 받을 계획이다.

거래자료, 동종 제품 간 가격비교 등을 시스템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가격검증시스템을 구축해 부당거래와 가격교란 행위를 보다 철저히 감시할 필요가 있다. 조사대상 기업의 권익 보호와 예측가능성을 주기 위해 조사.환수 기준 및 절차 규정도 마련하고 공정한 환수금액 산정을 위해 부당이득환수위원회도 설치, 운영할 계획이다.

최근 보호무역주의 강화, 중국과의 갈등 등 대외환경과 조기대선 등 정치적 상황변화로 국내외 환경이 녹록지 않고 오히려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렇게 정치·경제적으로 불확실할 때는 눈앞의 이익을 좇아 공공조달시장 질서를 혼탁하게 하는 세력들이 등장할 소지가 크다.

조달시장의 신뢰를 훼손하는 어떤 행위도 용납돼서는 안된다.
이번 공공조달시장에 대한 조사권 부여와 조사부서 신설은 궁극적으로 탈법적인 조달행위를 근절시키기 위한 워치독(Watch dog)과 폐쇄회로TV(CCTV) 기능을 강화하게 된다. 앞으로 공공조달시장이 공정한 게임의 룰이 지켜지는 공간으로 거듭난다면 워치독은 더 이상 짖지 않아도 되고, CCTV도 적발보다는 사전예방 기능으로 최소화될 수 있다.
조달시장이 오로지 기술과 품질을 기반으로 공정하게 경쟁하는 '기회의 장'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정양호 조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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