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은행 지점은 죽었나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4.17 17:14

수정 2017.04.17 17:14

컨설팅사 베인앤컴퍼니에서 2년전 도발적인 보고서 발표
무점포 '뱅크 3.0' 시대 성큼
[곽인찬 칼럼] 은행 지점은 죽었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2016년)이다. 주인공 블레이크는 영국 뉴캐슬에 사는 목수다. 생전 컴퓨터는 만져본 적이 없다. 하지만 실업급여는 온라인 신청만 받는다. 결국 그는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다. 영화는 중년 '컴맹' 실업자의 고단한 삶을 준수하게 그렸다.
심정적으론 공감이 간다. 그러나 21세기에 블레이크 같은 디지털 소외계층은 갈수록 살기가 힘들다.

은행도 마찬가지다. 영국에 빅4 은행이 있다. 로이즈와 바클레이스, HSBC, 로열 뱅크 오브 스코틀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지점망을 줄이는 중이다. 가디언지에 따르면 4대 은행은 지난 5년간 지점 1700개를 없앴다. 2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로이즈은행은 지점 크기를 확 줄이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 중이다. '마이크로 지점'엔 직원이 달랑 둘이다. 창구는 없고 태블릿PC만 몇 대 뒀다. 로이즈은행은 3년에 걸쳐 직원을 1만2000명 줄이는 게 목표다.

미국 컨설팅 회사 베인 앤 컴퍼니는 2015년 가을에 '은행 지점은 죽었나'(Is the Bank Branch Dead?)라는 도발적인 보고서를 냈다. 지점을 두면 돈이 많이 든다. 임대료도 내야 하고 직원 인건비도 줘야 한다. 그만큼 수익을 내면 문제는 없다. 현실은 어떤가.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기조가 굳어지면서 수익률은 뚝 떨어졌다. 고객들은 휴대폰 위에서 모든 은행 업무를 처리한다. 베인 앤 컴퍼니에 따르면 미국 은행 지점 가운데 3분의 1가량은 스스로 운용비도 벌지 못한다. 디지털 뱅킹 시대에 지점은 많을수록 손해다.

지점 줄이기는 국내에도 번졌다. 한국씨티은행은 지점 10곳 중 8곳을 없애기로 했다. 명분은 충분하다. 이미 은행 서비스가 대부분 디지털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씨티만큼 파격적이진 않지만 다른 시중은행들도 서서히 지점을 줄여가는 중이다. 이달 초엔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가 출범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머지않아 2호 인터넷은행 카카오뱅크도 문을 연다. 물리적 은행 문턱은 디지털 문턱으로 바뀔 참이다.

호주 출신으로 금융분야 미래학자인 브렛 킹은 베스트셀러 '뱅크 3.0'에서 은행은 더 이상 찾아가는 곳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럼 은행은 뭐하는 곳인가. 고객에게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대화 채널은 창구가 아니라 휴대폰이다. 이달 초 킹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이제 뱅킹은 고객이 집이나 자동차를 살 때, 여행을 하고 쇼핑을 할 때, 자녀들이 대학에 갈 때, 은퇴할 때 도움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킹은 "1~2년 안에 한국인 대부분이 모든 금융을 스마트폰에서 누릴 것"으로 예측했다.

은행원은 불안하다. 한국씨티은행 노조는 일손이 남아도는 직원들을 콜센터 업무에 재배치할까봐 안절부절못한다. 반발한다고 대세를 꺾진 못한다. 300여년 전 산업혁명 때 증기선이 처음 나왔다. 독일 뱃사공들은 안절부절못했다. 일자리가 없어질까 염려한 뱃사공들은 증기선에 올라 난동을 부리고 증기기관을 박살냈다. 하지만 화풀이가 기술 혁신을 멈출 순 없었다.


이제 은행 경영진은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지점을 줄이면 남는 직원들은 어디에 재배치하나. 혁신기술로 무장한 디지털 은행과 어떻게 싸워야 하나. 수백년 전통을 가진 외국 은행들은 어떤 몸부림을 치고 있나. 은행 변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본지가 19~20일 개최하는 제18회 서울국제금융포럼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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