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염주영 칼럼] 한반도 전쟁이 그리운 일본

염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4.24 17:21

수정 2017.04.24 17:21

유사시 피란민 선별 수용하고 軍 보내 자국민 보호하겠다는 나라가 친구일까, 적일까
[염주영 칼럼] 한반도 전쟁이 그리운 일본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며칠 전 중의원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한반도 유사시 일본으로 피란민이 유입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는 "일본이 보호해야 할 사람인지를 스크린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한국인 피란민을 선별수용하겠다는 말이다. 두 마디의 짧은 대화에 많은 것이 담겨 있다고 생각된다. 소름이 돋을 만큼 무서운 일본인의 계획성과 준비성을 또 한번 느꼈다. 일본 총리가 이런 얘기를 꼭 공개석상에서 해야 할까에 생각이 미치면 불쾌감이 치밀기도 한다.
불난 집에 부채질이 아니라 불 나기도 전에 부채질부터 하는 격이 아닌가.

그런데 나를 진짜 아찔하게 만든 것은 이런 불쾌감 따위가 아니다. 한반도에 전쟁 나기를 바라는 일본 정치인들의 깊숙한 내면이 읽혀지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트럼프 미 행정부의 선제공격 가능성 등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금융시장은 안정을 유지하고 있고, 외국인투자자들의 자금이탈도 없다. 전쟁이 나면 수십만에서 수백만의 사상자 발생을 감수해야 하는 쪽은 한국인데 일본이 더 야단법석이다. 일본은 왜 이러는 걸까.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이 속내를 드러냈다.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법에 따라 재외 일본인 보호조치를 검토할 것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만약 전쟁이 난다면 한국 내의 일본인을 보호하기 위해 자위대를 파병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자국민 보호를 내세운 일본군의 한반도 파병. 우리 영토 안에 우리 허락 없이 일본이 군대를 보내겠다고? 아무리 전시라 해도 참으로 해괴한 궤변이다. 만약 독일이나 프랑스에 전쟁이 나면 그 나라에도 허락 없이 군대를 보낼 것인가.

그런데 이나다 방위상의 턱없는 궤변이 낯설지가 않다. 일본은 구한말인 1882년에도 그랬다. 조선에 임오군란이 터지자 즉각 1500명의 군대를 파병했는데 그때도 명분이 자국민 보호였다. 일본은 이 군사력을 배경으로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고, 열강들과 전쟁을 일으켰으며, 결국 이 땅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일본은 지금도 한반도 전쟁이 가져올 군사안보적 이익에 목말라 있다.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을 공격하고, 북한이 남한 내 미군기지에 반격을 가한다면 전면전은 피할 수 없다. 일본은 이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아베 정부는 한반도 유사시 남한 내 자국민 보호를 위해 파병할 권리가 있음을 줄곧 주장해왔다. 2015년에는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해 사실상 미국의 양해도 얻었다. 이제 전쟁이 나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일본이 전쟁을 기다리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전쟁이 가져다 줄 막대한 경제적 이득 때문이다. 1950년 한국전이 발발하자 요시다 시게루 당시 총리는 "일본은 이제 살았다"고 했다. 이듬해인 1951년 당초 4.6%로 예상됐던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12%로 급등했다. 3년간의 전쟁이 가져온 호황은 이후 고도성장기를 여는 단초가 됐다. 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피폐해진 일본 경제에 한국전은 신이 내린 선물이었다. 일본의 정.재계 지도자들은 그때의 한국전 특수에 대한 강렬한 향수를 잊지 못한다.

일본은 그러나 그때 한반도에 파병을 못한 것을 애석해한다. 패전 직후여서 보낼 군대가 없었다.
지난주 이나다 방위상의 한반도 파병 검토 발언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일본은 다시 기회가 온다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요즘 부쩍 설쳐대는 일본 정치인들의 모습이 안보를 정쟁거리로 삼는 우리 정치인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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