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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vs. 신산업...기로에 선 게임산업, 게임사 스스로 답 찾아야

허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4.25 14:05

수정 2017.04.25 14:05

#.중학교 3학년 된 아들을 둔 40대 주부 A씨는 게임 때문에 고민이다. 아들이 공부를 뒤로 한채 친구들과 함께 PC방에서 게임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PC방에 가느라 학원을 빼먹는 날도 부지기수고 어떤 달에는 게임 아이템을 사느라 엄마 신용카드를 몰래 쓰기도 한다. A씨는 아들을 꾀어내는 게임회사들이 사회 악이라는 생각에 게임을 정부가 강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대학 졸업과 취업을 앞둔 아들을 둔 50대 B씨는 최근 소위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는 게임회사에 부쩍 관심이 간다. 아들이 평소 게임을 좋아해 게임회사 취업을 희망하고 있던 차에 잘나가는 게임회사는 10조원 이상 기업가치를 평가받는다는 말에 아들이 게임회사에 취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소프트웨어(SW) 관련 직종이 우대받는다는 얘기가 신문, 방송에서 나오고, 게임산업이 가장 유망하다는 말도 귀에 들어온다.
B씨는 게임회사를 쥐 잡듯 잡는다는 정부의 정책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반인들이 게임산업을 바라보는 두 가지 극단적 시선이다.

한국의 콘텐츠 산업을 주도하는 핵심인 게임산업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디지털 스토리텔링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하고 가야할 과제다.

게임업계는 정부의 얽히고 설킨 규제 때문에 성장이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있지만, 규제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일반인들의 부정적 인식을 스스로 불식하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달 대통령 선거 이후 대대적인 정책변화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게임산업이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대표산업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게임업계 스스로 천편일률적인 과금방식, 포커나 고스톱 같은 사행성 모사 게임물 등을 벗어 던지고 누구나 즐기는 여가·문화로 자리매김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조언이다.

■자율규제로 부정적 시선 지우기 나선 게임업계
25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오는 5월과 7월, 한국게임산업협회를 중심으로 두가지 자율규제안이 시행된다. 이르면 5월 온라인게임 결제한도에 대한 자율규제가 시행될 예정이며 7월에는 온라인게임과 모바일게임에 대한 이른바 '확률형아이템' 자율규제를 시작한다.

이번에 시행되는 자율규제는 그동안 게임업계의 고질병이었던 사행심 조장을 억제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게임업체들은 철저한 자율규제 준수로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줄이고 건전한 여가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토대를 닦겠다는 계획이다.

먼저 게임업계는 이르면 오는 5월 온라인게임에 대한 월 결제한도를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자율규제를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지금도 법적으로는 성인이 온라인게임에 돈을 쓰는데 제한은 없다. 하지만 게임업체들은 일괄적으로 월 50만원까지만 온라인게임에 이용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이는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온라인게임에 대한 사전 등급분류를 심사할때 월 50만원 결제한도에 대한 내용이 빠지면 등급을 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등급분류를 받지 못하면 게임을 출시할 수 없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술이나 카지노 등 유해성이 확인된 제품들도 성인들의 월 이용금액을 통제하는 사례가 없는데 유독 온라인게임에만 이런 법외규제를 적용하고 있다"며 "이런 법적근거 없는 규제가 게임업체들의 창의성을 말살하고 게임을 더 부정적으로 바라보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인들이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는데 정부가 얼마까지만 쓰라고 규제하지 않는 것처럼 게임도 규제하지 않아야 제대로 된 여가문화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난 여론의 중심, 확률형아이템 문제 해결될까
이와 함께 오는 7월에는 '확률형아이템'에 대한 자율규제안도 시행한다. 확률형아이템은 어떤 아이템이 나올지 모르고 일정 금액을 내고 사는 아이템을 뜻한다. 운에 의해 결과물이 결정되기 때문에 사행심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현재 대부분의 게임사가 적용하고 있는 수익모델이다.

벌써 10여년간 사행심 조장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게임업체는 여전히 확률형아이템 외에 다른 수익모델을 찾지 못하고 여기에만 의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게임업체들이 확률형아이템을 자율적으로 규제하겠다고 나선 것은 더이상 사행심을 조장하는 것만으로는 게임업계의 미래가 없을 수도 있다는 절박함이다.

강신철 한국게임산업협회장은 "확률형아이템에 대한 문제를 회피하기 보다는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요 게임업체들이 의견을 모았다"며 "철저한 사후관리감독이 가능하도록 한층 강화된 방안을 마련해 이용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강조했다.

■두가지 자율규제,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신뢰 회복 가능
게임회사들이 이같은 자율규제를 연달아 발표하는 것은 두가지 이슈가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게임업체들은 온라인게임에 법적인 근거가 없는 50만원 월 결제한도 규정이 있기 때문에 확률형아이템이라는 수익모델만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해왔다.

이번에 자율규제를 시행하는 게임사들의 숙제는 새로운 수익모델 발굴이다. 더이상 확률형아이템만으로는 이용자들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이 입증된 만큼 새로운 수익모델을 발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월 결제한도 자율규제도 시행한다는 것이 게임사들의 논리다.

하지만 이용자들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이미 여러차례 게임업체들이 자정노력을 하겠다고 했지만 수년간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자정노력을 하겠다고 했던 게임사들이 오히려 게임에 더 돈을 많이 쓰도록 부추켰다는 인식도 있다. 그동안 게임회사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시행되는 두가지 자율규제가 게임업체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에도 자율규제가 유명무실해지면 정부나 국회 차원의 더욱 강력한 규제가 시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확률형아이템 규제 법안은 여러 의원들이 발의해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황이다.


녹색소비자연대 ICT정책연구소 윤문용 정책국장은 "자율규제에는 그에따른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게임업계가 인식해야 한다"며 "특히 게임을 개발하는데 있어서 이용자들이 매출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작품의 생명력을 살려주는 동반자로 항상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jjoony@fnnews.com 허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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