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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조건부 사드배치 '원작'과 '아류작'

조창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4.28 17:32

수정 2017.04.28 17:32

[월드리포트]조건부 사드배치 '원작'과 '아류작'


기가 차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를 두고 하는 소리다. 사드의 명분과 효력 그리고 비용을 놓고 미.중 간 억지 주장이 사드 논쟁을 더욱 부추기는 형국이다.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의 아전인수식 사드배치 해석과 한국 정부 컨트롤타워 부재에 따른 코리아패싱이 사드배치 논란을 더욱 미궁으로 몰아넣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드배치 비용을 한국 정부에서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사드 문제는 안보냐 비용이냐의 양자 택일의 길로 좁혀들고 있다.

중국의 막무가내식 사드배치 반대론에 대한 반론은 한·미 동맹의 끈끈한 고리를 통해 일관된 설명력을 가졌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사드 비용 언급을 계기로 이 같은 공식이 깨지게 생겼다.

당초 사드배치는 분명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한·미 동맹의 안보보호 차원에서 추진돼왔다. 중국이 자국 안보위협론을 내세우며 사드배치 반대와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을 감행하는 것에 대해서도 한미는 한결같이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시민과 미군을 보호하기 위한 절대불가결한 선택이었다는 점에 방점을 뒀다.

사드배치는 한국 정부의 의지가 강한 점도 있지만 미국의 필요와 선택에 따라 진행된다는 점도 이 같은 맥락에서 강조돼왔다. 중국이 한국을 겨냥해 무차별 경제보복을 단행해도 사드 철회 여부는 미국의 의지에 달렸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배치 비용부담 문제를 걸고나오면서 사드배치 정당성에 대한 기존 논리들이 흔들리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1조원대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을 한국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면 이건 미국의 의지가 아니라 한국의 선택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사드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막을 정도로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점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안보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분명 막강한 대응무기체계가 필요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효력이 떨어지는 특정 물건을 선택해야 하느냐는 게 사드배치 반대론의 일부 주장이다.

소비자가 물건을 선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상품의 가치와 비용 간 비교를 통해 합리적 구매를 하는 게 소비자의 특성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가성비가 최고인 상품을 찾는 식이다. 그러나 상품의 내구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길 경우 비용과 상관없이 구매하는 경우가 있다. 문제는 안보와 관련된 무기구매의 상황이다. 안보를 위해 무한대의 비용을 감내할 것이냐 합리적인 선택을 할 것이냐를 놓고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주장으로 사드 문제만큼은 안보를 위한 절대적 필요성에서 벗어나 이제는 비용의 문제를 따져봐야 하는 상황에 빠지는 형국이다.

사드 논쟁의 혼선은 각 대선후보 캠프 내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사드 비용부담 문제가 예견된 일이었다며 협상을 통해 비용을 낮추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한다. 혹자는 차기 정부에서 사드배치 전반에 대한 의사결정을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반적으로 사드배치에 조건을 다는 식이 됐다. 원래 한·미 양국은 사드배치가 철회되기 위해선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이 선행돼야 한다는 조건부 사드배치론을 주장해온 바 있다.
이게 바로 '원작' 조건부 사드배치론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주장을 계기로 한국 정부의 비용부담 여부에 따라 사드배치 운명을 결정하는 조건부 사드배치론 '아류작'이 솔솔 거론되게 생겼다.


미국의 오만한 사드 비용 협상과 중국의 억지 사드 보복에 맞서 대선후보들이 내놔야 할 사드 관점은 무엇일까. 원작이냐 아류작이냐에 대한 명쾌한 답변이 필요하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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