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서초포럼

[여의나루] 대통령은 메시아가 아니다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5.02 17:11

수정 2017.05.02 17:11

[여의나루] 대통령은 메시아가 아니다

탄핵정국이 한창이던 두어달 전 학교 게시판에 붙은 포스터의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박근혜만 내려오면 우리 삶이 달라질까." 촛불시위가 이어지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외침이 높던 때였다. 살펴보니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꾸린 토론회 포스터였다. 국정농단에 대한 분노만으로 고단한 청년들의 삶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 삶을 바꾸기 위해 구체적인 실천을 논의하자는 제안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대학생활 자체도 만만치 않다. 학점 경쟁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게 치열하거니와 등록금, 생활비에 스펙 쌓기용 학원비까지 걱정해야 하는 학생들이 많다.
졸업해도 끝이 아니다. 이력서 100장을 내도 면접 한번 보기 어렵다는 취업난은 더 이상 새로운 얘기도 아니다. 9급 공무원에 응시해도 수십, 수백대 1에 이르는 경쟁을 뚫기 버겁다. 번듯한 대학을 졸업해도 비정규직 취업이 고작인 경우가 많다. 촛불을 든 청년들의 가슴 한쪽에는 현실에 대한 이런 좌절감이 자리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조기대선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다음 주면 새 대통령이 취임해 있을 것이다. 마음을 정해야 할 때지만 솔직히 아무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모두 자신이 대통령만 되면 우리 모두의 삶이 장밋빛으로 물들 것이라는 호언장담 일색이기 때문이다. 유력 후보일수록 심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겠다고 큰소리친다. 구체적인 공약을 거론할 것도 없다. 주요 후보들의 공약 이행에 드는 비용이 5년간 적게는 178조원, 많게는 55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계산을 인용하면 족하다. 대통령 하나 잘 뽑으면 국민 모두가 살판이 날 모양이다. 정말 그럴까. 돈만 퍼부으면 우리 삶이 정말로 달라질 것이라고 진지하게 믿는가.

요즘 이런 우스개가 있다고 한다. 대통령이 없으니 세상이 조용하고 경제가 되살아난다고. 그래서 당부하고 싶다. 다음 대통령은 과욕을 부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차기 대통령은 북핵문제 등 외교안보 위기상황만 해결해도 큰 업적을 남길 수 있다. 모든 분야에서 잘하려고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좋은 총리와 장관감을 골라 그들에게 국정을 믿고 맡기면 된다. 그들과 수시로 협의하는 모습을 보이고, 책임은 대통령이 진다는 자세만 견지하면 된다. 기업활동도 민간에 맡기면 된다. 녹색이니, 창조니 거창한 경제구호를 내걸고 독려하지 않아야 더 잘할 수 있다.

국민도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말자. 대통령은 나라의 모든 어려움을 한 방에 해결할 메시아가 아니다. 모든 분야에서 화려하게 펼쳐 놓은 공약을 왜 지키지 않느냐고 다그치지도 말자. 공약을 지키려고 무리하다가 나라를 위태롭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그저 제자리를 지키며 모든 국정현안을 합리적으로 처리해 나가는 모습만 보여도 좋다고 생각하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 후보 자신들의 인식이다. 자신이 구원자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모든 걸 해준다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요즘 온라인상에서 민주당 김부겸 의원의 '격정 유세' 동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대구에서 후보 지원유세를 벌이던 그는 싸늘한 민심에 언성을 높이며 말한다. "우리라고 무슨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하지만 IMF 위기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고통을 참고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호소했을 때 우리가 금붙이 팔아 위기를 극복했잖습니까." 대통령은 그래야 한다. 국민은 가만히 있고, 내가 위기를 해결해 줄 수 있노라 말하지 말아야 한다.
함께 위기를 극복하자고, 단지 내가 앞서 가겠노라고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만병통치약은, 더더구나 메시아는 아니라는 말을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삶이 달라진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