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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한·미 FTA 논란 최고 병법은 '부전승'

정지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5.02 17:12

수정 2017.05.02 17:12

[차장칼럼] 한·미 FTA 논란 최고 병법은 '부전승'

2500여년 전 중국 춘추시대(BC 770~403) 오왕 합려의 패업을 도운 명장 손무는 그의 손자인 손빈과 함께 3대에 걸쳐 '손자병법'을 저술했다. 이 책의 모공편엔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부지피부지기 매전필패(不知彼不知己 每戰必敗). 적과 나를 잘 알면 백번 싸워도 패하지 않지만 적을 모른 채 나만 알고 있으면 승패 확률은 반반이다. 만약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울 때마다 패한다는 뜻이다.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수시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지난 3월 보고서에서 한·미 FTA 재검토 방침을 공식화한 데 이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도 지난달 방한, "한·미 FTA를 손보겠다"고 밝혔다.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 역시 언론 인터뷰와 백악관 브리핑에서 "한·미 FTA 개정을 검토 중"이라고 하더니 급기야 지난주엔 미국의 정점 트럼프 대통령까지 "한·미 FTA는 받아들일 수 없는 '끔찍한 협정'"이라며 "재협상하거나 종료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발언은 어느 나라나 국정의 가이드라인이 된다는 점에서 이전 발언과 무게가 확연히 다르다. 한·미 FTA 손질에 대한 확실한 방점이다.

사실 트럼프 정부가 한·미 FTA를 문제 삼은 것은 이전부터 예고된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한·미 FTA를 비롯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이런 협정들이 불평등하며 자국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기 때문에 개정, 재협상 혹은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실제 트럼프 정부는 출범 이후 TPP를 탈퇴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이 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고도로 계산된 미국의 통상전략을 엿볼 수 있다. 개정.재협상.폐기를 언급하면서 관련 상대국을 압박하지만 언제, 어떤 형태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을 전혀 노출하지 않았다. 이른바 '불확실성' 전술이다. 반면 상대국은 속이 타 들어갈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이를 느긋하게 지켜보면서 또 다른 전술을 꺼냈다. 툭툭 건드려보기도 하고 넌지시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상황에 따라 "영원한 동맹국"이라며 때론 당근도 쥐여준 후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폈다. 손자병법의 지피지기에서 더 나아가 상대방이 나를 알 수 없도록 하는 전략까지 펼친 셈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한·미 FTA 발언이 있을 때마다 "발언의 취지를 확인하겠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면서도 구체적인 대응 시나리오는 공개하기를 꺼렸다.
미국의 불확실성에 몸이 달아 섣불리 패를 먼저 보여주지 않겠다는 논리다. 백번 싸워도 패하지 않을지, 반반의 승패 확률을 가질지, 치열한 통상전쟁에서 우리 정부의 어깨가 이래저래 무거워 보인다.
물론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부전승', 즉 개정이나 재협상이 없도록 하는 게 가장 좋은 병법이다.

jjw@fnnews.com 정지우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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