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트럼프 분노의 가벼움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5.14 17:31

수정 2017.05.15 14:28

[데스크 칼럼] 트럼프 분노의 가벼움

지금 워싱턴 정가를 뒤흔들고 있는 제임스 코미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 해임사건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의 기술' 중 어느 항목에 해당될까. 트럼프의 베스트셀러이자, 스스로 꼽는 최고 역작 '거래의 기술'에 나온 그의 비즈니스 원칙 11가지 중 아마도 이번 사안은 '항상 최악을 예상하라'에 가장 가까운 게 아닐까 싶다.

트럼프는 사람들이 자신을 긍정적 사고의 힘을 믿는 이로 알겠지만, 실제로는 부정적 사고능력을 믿는 사람이며, 항상 최악에 대비하는 것을 거래의 우선 기술로 삼는다고 책을 통해 강변했다. 온 세계가 주시하고 있는 현 정부 러시아 내통 의혹을 수사해온 정보기관 수장을 그다지 절박해 보이지 않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해고하면서, 이로 인한 후폭풍을 예상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데도 결국 코미를 날려버린 것은, 코미가 그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이 자신에겐 더 최악이라고 판단했기 때문 아니었겠나.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코미를 향한 트럼프의 분노가 곪아터지는(festering) 수준이 됐으며, 이 분노가 사태를 촉발한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참을 수 없는 '트럼프 분노'의 가벼움으로 결국 여기까지 왔다는 해석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코미' 대결은 그들의 대화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막장 수준으로 가고 있다.
취임 후인 1월 27일 가졌던 둘만의 만찬, 그 뒤 이어진 두 차례 전화통화에서 트럼프는 코미에게 불리한 발언이 녹음된 테이프가 있을 수 있음을 내비치며 코미를 협박하는 기막힌 상황에 이르렀다. 코미는 여기서 일단 후퇴다. 이번 주로 예정된 상원 정보위 비공개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하지만 전열을 가다듬은 뒤 제대로 반격에 나선다면 사건은 또 다른 격랑에 휩싸일 수 있다.

코미를 해임한 다음 날 러시아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세르게이 키슬랴크 주미 러시아대사와 회동하며 웃고 있는 트럼프의 모습은 묘했다. 키슬랴크가 누군가. 러시아 내통 의혹의 핵심 당사자다. 트럼프 손을 잡은 키슬랴크는 위풍당당했다.

이런 트럼프에게 세계 정상들은 앞다퉈 저자세.조공 외교를 이어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를 대하는 세계 수반들의 대응전략을 '아첨(flattery) 외교'라고 평했다. 회담 전 상대에게 극도의 공포감을 안겼던 트럼프가 회동 후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인 것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들만 있을 때 그들끼리 무엇을 주고받았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 차례다. 이르면 내달 서로 마주하게 될 두 사람은 살아온 궤적이 너무나 다르다. 외교도 비즈니스로 삼고 있는 트럼프는 이미 우리에게 수차례 강펀치를 날렸다. 대선 전 사드비용 청구서를 들이밀었고, 원칙적 입장에서 그의 발언을 뒤집은 허버트 맥매스터 미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에겐 강한 분노를 표출했다. 트럼프의 안보 개념도 '거래의 기술' 연장선에 있다. "한국을 지켜준 대가로 받은 게 없다. 그들은 공정한 대가를 지불할 때가 됐다.
반드시 지불하게 될 것이다." 그의 저서 '불구가 된 미국'에도 재차 나오는 내용이다.
이런 강한 신념의 트럼프에게 문 대통령은 어떤 카드를 준비하고 있을까. 일촉즉발 위기에 몰린 한반도의 운명이 이제 트럼프, 문 대통령 두 사람의 만남에 달려 있다.

jins@fnnews.com 최진숙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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