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로]

아름답게 퇴장한 황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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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잊혀진 인물이 된 것 같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 7시간 행적 관련 기록의 대통령지정기록물 봉인 논란에 대해 "왜 제가 증거인멸을 하겠느냐. 법조인 출신은 불법을 고의적으로 저지를 수 없다"고 단언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 이야기다. 그는 법무장관에 이어 국무총리, 급기야 대통령 탄핵이라는 비상시국에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평탄치 않은 공직생활을 해야 했다. 지난 11일 퇴임사를 통해 "주어진 소임을 내려놓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간다"며 특히 공직자들에게 극기봉공(克己奉公)의 자세를 당부했다.

상당 기간 보수진영의 유력 대선후보로 거론됐고, 때로는 당시 야당을 중심으로 '대통령 코스프레'를 한다느니, 박근혜정권 국정파탄 1급 공동책임자라느니 모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랬던 그의 퇴장에 '아름답다'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은 것은 처신의 때를 알고 그 길을 갔다는 점에서다. 그의 고백처럼 간단치 않은 역사의 한가운데서 무거운 중압감에 밤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는 날이 왜 많지 않았겠는가.

그는 자의였든 아니었든 보수진영에 마땅한 대선후보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상당한 지지율을 확보하며 일거수 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 됐다. 미증유의 경제난 속에 현장을 찾으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광폭 행보를 하는 게 아니냐는 등 그럴싸한 분석이 제기됐다. 그런 만큼 당시 야권의 견제와 압박의 강도 역시 높아갔다. 그러나 결국 대선후보로 출마하지 않았고, 새 대통령이 선출되자 미련 없이 직을 내려놓은 채 국민의 한 사람이 됐다. 2015년 6월 18일 총리 취임 이후 694일(1년11개월) 만이다.

사실 황 전 총리에게 각인된 이미지는 공안검사다. 1983년 청주지검 검사로 첫발을 디딘 이래 2011년 부산고검장을 끝으로 28년간 검찰에 몸담으면서 김현희 KAL기 폭파사건, 임수경씨 평양학생축전 참가사건, 강정구 동국대 교수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옛 안기부 X파일 사건 등을 다뤘다. 법무장관 재임 때는 이석기 옛 통진당 의원 내란음모사건, 2012년 대선 국정원 댓글사건, 헌재의 옛 통진당 위헌정당 해산사건 등 공안사에 남을 사건이 그와 같이했다.

이 때문일 것이다.
일각에서는 그를 기득권 체제를 수호하는 첨병인 것처럼 폄훼하고 더러는 박 전 대통령의 아바타로 몰아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국무총리.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영광이 영광일 수 없는 시대 상황에서 격랑의 대한민국이 난파하지 않도록 국정의 중심을 잡고 고군분투했다는 사실만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특히 "어떤 경우에도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자긍심을 잃지 말고 긍정의 힘, 배려와 관용의 정신으로 함께 나가야 한다"는 말은 직을 내려놓은 '건강한' 공안검사 출신으로서 격변기 우리 사회에 던지는 경구가 아닐까 싶다.

doo@fnnews.com 이두영 사회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