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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사면초가 유통가

정훈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6.05 17:18

수정 2017.06.05 17:18

[윤중로] 사면초가 유통가

요즘 유통가 사람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죽상이다. 온갖 환경이 '먹구름'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업종에 따라 처한 상황이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한마디로 사면초가다. 유통산업의 기간업종이라고 할 수 있는 백화점(면세점), 대형마트, 아울렛 업계는 그야말로 '멘붕'이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으로 인한 중국인 관광객 및 한류상품 수요 감소로 면세점을 비롯한 유통업체 전체가 극심한 매출부진에 빠졌다. 가뜩이나 대형마트는 강제휴무의 덫에 빠져 있다.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규제 강화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국회에는 '골목상권 보호'라는 명분 아래 22개의 유통규제 법안이 올라있다. 이들 법안 가운데는 강제휴무 대상업종 확대, 대형 유통업을 허가제로 강화, 상권영향평가 대상 확대 등 아예 대형 유통시설 입점을 가로막는 내용이 대거 포함돼 있다. '갑질' 행위에 대한 이중처벌 논란을 빚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일부는 이미 국회를 통과해 시행 중이거나 시행을 앞두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각종 규제에 대응하고 대처할 새도 없이 고용확대를 제1의 목표로 삼은 새 정부의 고용정책은 유통산업에 큰 그늘을 드리우는 모양새다. 업종 특성상 비정규직을 많이 쓰는 외식기업이나 대형마트 등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임금체계는 물론이고 가격구조, 사업구조 등 구조적인 문제로 귀결된다. 한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는 "무기계약직을 많이 쓰는 외식기업에서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면 사업을 접으라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기본적으로 인건비가 40% 이상 오르는 데다 복지문제 등을 감안하면 엄청난 비용증가 요인이 발생한다. 임금·복지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기존 정규직과 갈등도 생길 수 있다. 동시에 인건비 상승은 곧 메뉴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거나 국민 부담으로 전가되는 것이다. 정부는 더 나아가 최저임금을 연 15% 올려 2020년엔 시간당 1만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유통사업은 끝났다" "국내에선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등의 비관적인 얘기가 쏟아진다. 이처럼 유통산업은 산업구조의 근간을 좌우할 혁명이 진행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 아쉬운 건 이런 정책을 마련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3대 경제주체 중 하나인 '소비자'의 목소리가 배제된다는 점이다. 대형 유통점포의 입점규제가 오히려 경쟁을 제한해 소비자 주권을 저해한다는 학계 등 일각의 주장도 나온다.
유통산업이 내수시장의 핵심으로 수출과 함께 경제의 한 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각종 새로운 정책을 쉽게 내놓을 일이 아니다. 마침 인터넷, 인공지능 등의 발전과 함께 유통산업도 4차 산업혁명으로 구조개편을 요구받고 있다.
유통시장 관련 규제와 고용개선 작업은 구조개편과 연계해 중장기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poongnue@fnnews.com 정훈식 생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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