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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택시비의 추억

서혜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6.12 17:23

수정 2017.06.13 13:28

[윤중로] 택시비의 추억

아침 출근길 시간이 빠듯해 지하철역까지 택시를 탔다. 집앞에서 역까지는 기본요금 거리다. 그런데 하차 순간 문제가 발생했다. 카드를 대라는 지시어에 따라 요구된 위치에 정확히 카드를 갖다댔건만, 계속 승인이 나질 않는 거였다. 두세 번 하다보면 해결되는 게 보통인데, 이번엔 그렇지가 않았다. 갖은 방법을 다 써보았으나 죄다 실패한 기사 아저씨는 현금도 없이 다급한 표정만 짓고 있던 내게 "그냥 가라"는 최후 카드를 내밀었다.
상황이 계좌번호를 불러달라고 하기도 애매한 터여서, 나는 미안하다는 말만 수차례 한 뒤 역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차량 운행간격이 5∼10분인 공항철도역에서 간발의 차로 지하철을 놓치고 허망함에 털썩 의자에 앉았는데, 피식 웃음이 났다. 카드로 택시비를 지불하는 시대가 실제 올 것이라고 믿지 않았던 2000년대 초반 '택시비 사고'의 기억 때문이다. 하루는 늦은 시간 택시를 타고 집앞에 도착했는데, 이런! 지갑에 현금이 하나도 없는 거였다.

10층 집까지 올라가면 현금이 있을까. 머릿속으로 집안을 곧바로 수색했지만 한푼도 없다는 결론이 났다. 그 대신 얼마 전 해외에서 남겨온 미국 달러지폐는 제법 있는 게 떠올랐다. 그런데 택시비를 달러로 지급한다? 무엇보다 혼날 거 같은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방법이 없지 않은가. "기사님, 저기요… 혹시 달러 받으세요?" 택시 기사의 떠나갈 듯한 성난 목소리에 나는 경비실로 달려가 돈을 꿔야 했다. 무사히 집에 도착해 드디어 소파에 드러누워 평온을 찾으려는 순간, 우당탕 현관문이 열렸다. 동시에 등장한 남편의 비명. "태, 택시비 좀…." 신음하듯 나는 말했다. "겨, 경비실로…."

'택시비 사고' 중 두고두고 잊지 못하는 장면은 정부과천청사를 출입하던 2003년 어느 일요일 아침에 있다. 그날 오전 9시까지 청사 기자실로 가야 했던 나는 시간이 촉박해 택시를 탔다. 집에서 청사까지는 보통 2만원가량 요금이 나오는 거리였다. 휴일 아침 택시는 강변북로를 막힘없이 달렸다. 운전대 오른편 사진 두 장이 가볍게 흔들렸다. 미국 워싱턴 의사당을 배경으로 깜찍한 포즈를 한 여자 아이와 이 꼬마의 부모로 보이는 어른 두 명이 사진 속에 있었다.

미국에 사는 딸과 사위, 손녀라고 설명해준 택시 기사는 이 가족의 고군분투기를 한참 들려줬다. 밑바닥에서 시작해 타국에서 단단히 자리잡은 딸을 그는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으며 자신의 인생철학은 감사라고 했던 거 같다. 한국 사회에 대한 논쟁도 잠시 이어졌다. 그런데 사고는, 또 하차 순간 터졌다. 지갑을 열어보니 카드만 달랑 있었다. 현금인출기가 있는 후생관으로 급히 뛰어갔으나 입구 문이 굳게 잠겼다. 송구한 마음에 계좌번호를 요청했는데, 그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좋은 기사로 택시비를 대신하겠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환한 웃음으로 택시를 돌려나갔다. 그 택시비는 지금도 내게 빚이다.
'택시비의 추억', 감사의 기억이 함께 있다.sjmary@fnnews.com 최진숙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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