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여의도에서] '시인' 문체부 장관의 과제는

조용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6.16 17:14

수정 2017.06.16 17:14

[여의도에서] '시인' 문체부 장관의 과제는

'문과여서 죄송합니다'라는 의미의 '문송합니다'라는 신조어가 한때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기업들이 이공계 채용을 늘리자 인문계 졸업자들의 취업문이 한층 좁아진 세태를 반영한 신조어다. 하지만 최순실-차은택 국정농단의 진원지였던 문화체육관광부가 만신창이가 되면서 세종시 관가를 중심으로 '문체부여서 죄송합니다'의 줄임말의 의미로 해석됐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문화창조융합벨트사업을 지원하는 문화콘텐츠산업실,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 관련 부서, 김종 전 2차관이 담당했던 체육정책실 등 문체부가 사실상 최순실-차은택 국정농단의 '놀이터'라는 오명을 남겼기 때문이다.

'팔길이만큼 거리 두고 지원은 하지만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은 지난 1945년 영국이 예술 지원 대상을 선정하고 지원하는 예술평의회를 창설하면서 정치권력과 관료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 채택한 정책이다. 이 덕분에 보수당이든 노동당이든 정권이 바뀌더라도 상관없이 예술평의회는 독립적인 전문가들이 맡아 투명하게 운영할 수 있었다.
최순실-차은택의 국정농단은 정치권력과 관료, 예술이 서로 뒤엉키면서 결국 지원하는 대상과 지원받는 대상이 서로 한통속이었다는 점에 문제가 있었다.

지난달 출범한 문재인정부는 문체부 장관 후보로 시인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국회의원을 내정했다. 도 장관 후보자는 지명 이후 "문화예술인들은 감시받지 않을 권리, 검열받지 않을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배제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 팔길이 원칙으로 돌아가 다시는 이 나라에 블랙리스트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 문화예술인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문화예술에만 전념할 수 있는 창작환경을 만들고 문화 복지를 강화하겠으며 예술인들의 문화 자유권, 문화 창작권을 보장하고 모든 국민이 생활 속에서 문화를 누리고 문화로 행복한 시대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만신창이 상태가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지만 문체부의 책무는 여전히 막중하다. 당장 내년 평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야 하는 국가적 과제가 있다. 마구 뒤틀린 문화예술계를 제자리로 되돌려놔야 한다. 문화산업 분야는 시장논리에 맡기고 정부는 문화.예술적 다양성을 위해 발전시켜야 할 순수예술, 전통문화 등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

체육분야에선 수많은 체육인들의 의견과 고충을 듣고 그동안 성장 위주의 스포츠 정책이 야기했던 여러 스포츠 적폐를 청산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경기력과 인성을 함께 키워감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체육을 통해 건강과 행복을 추구하도록 해야 한다.


도 장관 후보자는 문체부 및 산하기관이 독립성.자율성.투명성을 갖고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정비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접시꽃 당신' 시집으로 유명한 도 장관 후보자를 지명한 것은 사람 냄새가 나는 문화.체육.관광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도 장관 후보자는 앞으로 인간미 넘치는 시인의 가슴으로 만신창이가 된 문체부를 보듬어나가 문화 강국 대한민국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길 기대한다.

yccho@fnnews.com 조용철 문화스포츠부 차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