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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절벽 위기 극복, 일본에서 배운다] "1억 총활약 사회 실현"… 도전하는 일본

장민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6.22 18:07

수정 2017.06.22 21:05

fn 창간 17주년 기획
(상) 1억 인구 유지 위해 소득 높이고 노동시간 줄여 출산 장려
1989년 출산율 1.57명 각종 저출산대책 실패하자 2015년 9월 아베 주도로 1억 총활약 추진실 출범
[인구절벽 위기 극복, 일본에서 배운다] "1억 총활약 사회 실현"… 도전하는 일본


인구절벽을 해소하려는 일본의 위기 극복기는 새로울 게 없다. 1990년대 중반부터 정부 차원에서 줄기차게 밀어붙였지만 실패를 거듭해 왔다는 뉴스는 한국에서도 익숙하다. 하지만 아베 신조 총리 정부가 '1억 총활약 사회 실현'을 사실상 최우선 국가정책 목표로까지 설정하면서 최근 보이고 있는 과감한 정책 행보는 급격한 고령화, 초저출산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한국에 수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파이낸셜뉴스는 '인구절벽 위기 극복, 일본에서 배운다'는 주제로 창간 17주년에 맞춰 기획시리즈를 내보낸다. <편집자주>

【 도쿄(일본)=특별취재팀】 일본 도쿄 지요다구 나가타초 지역은 정부부처, 총리관저 등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일본의 '정치 1번지'. 나가타초 지역에는 일본 의회도 자리잡고 있어 나가타초는 곧 일본 정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정치 중심지답게 9일 찾은 나가타초 분위기는 무거웠지만 일본 총리관저 맞은편 내각부 본부건물 2층 220호실에 위치한 '1억 총활약 추진실'은 걸려 있는 간판에 걸맞게 활기가 넘쳤다.
일본 정부는 이곳을 공식적인 이름을 가진 정부부처라고 부르기보다는 실험실이라고 지칭한다. 모든 실행가능한 실험을 통해 일본 사회에 1억명의 사람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하자는 목표도 주어졌다. 사회적으로 저출산·고령화가 두드러지면서 일본이 갖가지 한계에 부딪히자 아베 신조 총리 주도로 2015년 9월 출범했다. '1억 총활약 계획' 총괄부서다.

사실 저출산을 이겨보려는 일본의 구상 자체는 새로울 게 없다. 저출산 대책은 역사(?)가 있을 정도로 오래됐기 때문이다. 일본은 출산율이 1.57명까지 떨어진 1989년 이른바 '1.57 쇼크'로 전 사회가 충격을 받은 뒤 1990년대부터 시작됐다. 1999년 톱스타 아무로 나미에의 당시 남편을 홍보대사로 등장시켜 '육아를 돕지 않는 남자를 아빠라고는 부르지 않는다'는 캠페인까지 벌인 적이 있다.

20년을 훌쩍 넘긴 저출산대책에도 추세를 돌리지 못하면서 나온 게 '1억 총활약 계획'이다. 1억 총활약 추진실에 근무하는 다케다 고스케 일본 내각관방 참사관은 "결혼해 아기를 낳고 싶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실현하지 못하는 상황을 정부가 (모두) 제거해 준다는 게 이전 계획들과는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큰 틀에서 봤을 때 사회개혁이다. 실제 '1억 총활약 플랜'에는 저출산대책은 당연히 포함돼 있고 임금인상, 노동시간 단축, 여성정책, 간호종사자 이직방지 대책까지 포함돼 있다.

일본 정부는 저출산 극복을 위한 노력을 1990년대부터 시작했다. 아베 신조 총리 정부는 투입한 시간과 재정에 비해 성과가 미흡하다고 보고 지난 2015년 내각부(총리실)에 '1억 총활약 추진실'을 출범시키는 등 범 정부 차원의 인구절벽 극복책을 강도높게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요코하마시 보육소를 방문한 아베 총리(가운데)가 어린이들과 함께 수업에 열중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저출산 극복을 위한 노력을 1990년대부터 시작했다. 아베 신조 총리 정부는 투입한 시간과 재정에 비해 성과가 미흡하다고 보고 지난 2015년 내각부(총리실)에 '1억 총활약 추진실'을 출범시키는 등 범 정부 차원의 인구절벽 극복책을 강도높게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요코하마시 보육소를 방문한 아베 총리(가운데)가 어린이들과 함께 수업에 열중하고 있다.


소득 문제가 우선시된 이유는 간단하다. 다케다 참사관은 "비정규직의 대우가 낮은 것이 저출산의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저출산 쇼크' 이후 각종 대책을 시행해본 일본 정부는 결국 보육지원정책, 일.가정 양립 정책이 제 아무리 탄탄하게 마련돼 있더라도 아이를 낳는 가정의 소득이 늘어나지 않고서는 출산율을 끌어올릴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1억 총활약 계획'에서 설정한 출산율 목표치는 1.8명이다. 지난해 6월 2일 일본 내각 각의(한국의 국무회의)에서 결정된 "(출산율과 관련) 희망출산율 1.8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개선을 더욱 철저하게 할 필요가 있으며 '동일노동 동일임금', 장시간 노동 시정 등 일하는 방식 개혁을 3년간의 최대 도전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일본의 사실상 경제정책의 초점을 '1억 총활약 계획'에 맞출 정도로 일본은 인구감소라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현재 출산율은 1.46명에 머물러 있다.

일본 총무성이 2016년 10월 1일 시점의 인구추계를 인용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2016년 일본 총인구는 전년보다 16만2000명 감소한 1억2963만명(외국인 포함)이다. 신생아보다 사망자 수가 더 많은 자연감소는 29만600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51년 이래 가장 많다.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처음으로 27%를 넘었다. 이 때문에 '1억 총활약 추진실'은 '일하는 방식 개혁실현 추진실'과도 붙어 있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상식적인 근무환경이 전제돼야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고 출산율 증가로도 이어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2015년 12월 광고 대기업인 덴쓰의 여성 신입사원이 월 100시간 이상의 잔업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장시간 노동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고 아베 정부도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마련에 착수했다.

일본의 법정 근로시간은 현재 주 40시간이다. 이 시간을 넘겨 일하면 연장노동에 해당되는데, 아베 정부는 이 연장노동시간을 월 45시간 이하로 제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1년 단위로는 연장노동시간이 360시간을 넘어선 안된다. 노사 합의에 따라 성수기 월 100시간, 연간 720시간 까지 늘릴 수는 있다. 물론 노사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후생노동성은 종업원이 301명을 넘는 대기업 약 1만5000개사를 대상으로 직원들의 월평균 초과근무시간을 개별기업 홈페이지 혹은 정부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최소 연 1회 공개하도록 의무화하기로 했다. 위반하면 행정지도나 권고를 받고 최대 20만엔의 벌금을 내야 한다. 종업원이 300명을 넘지 않는 중소기업은 벌칙이 없는 '노력 의무' 수준으로 공개하도록 권유한다.

장시간 노동은 저출산을 심화시키고 여성의 활약을 방해하고 있다는 게 일본 정부의 판단이다. 일자리 전체의 40%가 비정규 고용인데, 여성의 경우로 보면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라는 설명이다. 재택근무 활성화도 같은 맥락이다. 대표적으로 일본 최대 자동차회사인 도요타는 지난해 사무직과 연구직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2시간만 회사에 나오고 나머지는 집에서 일하는 파격적인 재택근무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특별취재팀 이병철 차장 김용훈 장민권 기자

#. 1억 총활약 계획이란? 일본 아베 신조 정부가 추진 중인 저출산 극복 대책이다. 2015년 9월 시작됐다. 아베 총리의 경제정책을 일컫는 '아베노믹스'에 포함돼 있다. 노동인구 증가 및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해 성장과 분배 순환을 잘 시키기 위한 모델을 만들자는 정책이 첫번째다. 다음으로는 저출산 극복 대책이다. 희망출산율을 1.8명으로 잡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노동시간 단축 등을 모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나이 든 부모 등의 간병을 위한 이직 방지 정책이다.
일본에서는 연간 10만명 정도가 부모 간호를 위해 일을 그만두고 있다. 이를 위해 간호, 요양보호원 등 서비스 부문에 재정 등을 집중 투입하고 있다.
보육소(어린이집)를 늘리는 것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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