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칼럼]

갑을문제와 공정위의 역할

"5년 넘게 운영해 온 제 커피전문점이 있는 건물을 가맹본부가 매입하고 임대차계약을 갱신하지 않는 방법으로 가맹계약을 해지하려 합니다. 하루아침에 소중한 일터를 빼앗기게 생겼습니다." "대규모 유통업자와 납품계약을 맺고 패션잡화들을 준비해놓았는데, 돌연 이 상품들을 인수하지 않겠다고 하면 대체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갑의 횡포를 고발하는 을의 눈물이 담긴 하소연들이다. 이런 갑을문제를 누가 해결해야 할까. 공정거래위원회는 갑을문제와 관련,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혹자는 경쟁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쟁을 촉진하고 담합과 같은 경쟁제한행위를 시정하는 데 주력해야 하고, 갑을문제는 당사자 간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며 글로벌 규범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경쟁을 가로막는 담합은 다수 소비자의 피해를 초래하기 때문에 공정위가 개입해 공익을 보호해야 하지만, 갑을문제는 당사자 간의 사익 문제라 당국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 주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첫째, 우리 사회의 갑을문제는 갑과 을 간 1대 1의 문제가 아니라 1대 다수의 문제다. 사적 계약은 당사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전제로 성립돼야 하지만 선택권이 없는 을에 해당하는 많은 하도급업체, 가맹점주, 납품.입점업체를 보라. 이들에 대한 갑의 불공정행위가 여러 분야에서 지속적.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면 당국이 나서야 할 시장질서의 문제인 것이다.

둘째, 우리 사회에서는 갑을문제를 민사소송으로 풀기 어렵다. 만일 갑을문제가 법원에서 민사적으로 원활하게 해결될 수 있었다면 현재와 같은 사회적 요구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경제적 약자에게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사법 절차의 활용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약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선진국에 정착돼 있는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제, 사인의 금지청구제, 디스커버리 제도 등이 우리나라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거나 활성화되지 않아서 피해자인 을이 소송을 끌고 가기 어렵다.

이런 두 가지 측면에서 볼 때 갑을문제를 당사자 간에 민사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공정위가 갑을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공정위는 앞으로 하도급.가맹.유통.대리점 등 경제적 약자의 피해가 우려되는 분야에서, 문제가 제기되는 거래 유형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을 토대로 적극적으로 직권조사를 할 계획이다. 그리고 법과 규칙이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엄정하게 적용되도록 함으로써 공정거래 관련법 집행에 대한 을의 신뢰가 높아지도록 할 것이다. 나아가 구조적인 힘의 불균형이 시정되도록 을의 협상력을 높이는 제도 개선도 병행할 계획이다.


공정위의 역할에 대한 시대적 요구와 국민적 관심이 과거 어느 때보다 크고 막중하다. 공정위는 경제적 약자 보호를 위한 마지막 보루라는 각오로 공정한 시장경제질서 확립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국민들께서도 애정과 격려의 시각으로 지켜봐 주시기를 바란다.

신영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