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인구절벽 위기 극복, 일본에서 배운다] 도쿄 대졸자 1명당 일자리 2개 이상…고령화가 부른 착시

장민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6.26 17:13

수정 2017.06.26 22:06

fn 창간 17주년 기획
(하) 고용지표 호조의 두 얼굴
웃지 못할 고용지표 호조
일할 사람 100명에 일자리 148개, 생산가능인구 20년새 1100만명 ↓
초고령사회 곳곳서 경고음
치매 노모 살해한 사건에 열도 충격.. 70대 부모 간병 위해 40대는 실직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 격납고에서 지난 4월 3일 열린 일본항공(JAL) 신입사원 입사식에 참석한 우에키 요시하루 JAL 사장(앞쪽 가운데)이 새내기 사원들과 함께 일제히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4월 유효구인배율이 43년 만에 최고 수준인 1.48배로 집계됐을 정도로 최근 일본의 고용지표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 격납고에서 지난 4월 3일 열린 일본항공(JAL) 신입사원 입사식에 참석한 우에키 요시하루 JAL 사장(앞쪽 가운데)이 새내기 사원들과 함께 일제히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4월 유효구인배율이 43년 만에 최고 수준인 1.48배로 집계됐을 정도로 최근 일본의 고용지표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 도쿄(일본)=특별취재팀】 도쿄지하철 도자이선 다케바시역에서 내려 일본경제연구센터를 찾아가는 길은 단순했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최근 일본 후생노동성이 내놓은 고용지표의 의미가 머리를 맴돌았기 때문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4월 유효구인배율이 43년 만에 최고수준인 1.48배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2016년 유효구인배율은 1.39배였다. 4월 정규직 유효구인배율은 0.97배라고 발표했다.

유효구인배율이란 일정 기간 내 일자리 수를 구직자 수로 나눈 값이다. 4월 유효구인배율 수치가 의미하는 것은 전체 일자리는 148개인데 일할 사람은 100명뿐이고, 구직자 100명 중 97명은 정규직으로 취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20년' 이전에 10명 중 8~9명이 취업했던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취업난으로 시름하는 한국의 시각에서 1배를 넘는 유효구인배율은 부러움 그 자체다.

[인구절벽 위기 극복, 일본에서 배운다] 도쿄 대졸자 1명당 일자리 2개 이상…고령화가 부른 착시

[인구절벽 위기 극복, 일본에서 배운다] 도쿄 대졸자 1명당 일자리 2개 이상…고령화가 부른 착시


■일자리 많지만 고용형태별 '격차'

대졸자들의 일자리 체감도가 더 높다. 최근 블룸버그는 일본의 취업박람회와 관련, "도쿄에서 지원자 한 명당 일자리는 두 개 이상"이라고 보도했다.

고용지표 호조에도 일본 정책당국과 전문가 집단은 여전히 일본의 미래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움츠렸던 일본 경기가 서서히 회복되는 가운데 생산연령 인구가 감소하면서 고용지표 호조 현상이 나타나는 일종의 착시라는 분석이 우세해서다. 인구구조 변화의 과실(?)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15~64세 생산가능인구는 1995년 8720만명에서 2015년 말 7590만명까지 줄었다. 20년 사이 1100만여명이 노동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일본 정부에서도 일자리 풍년이 가져온 이 같은 지료를 되레 경계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지금이 오히려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일본의 새로운 도전 적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많은 기업에서 임금인상이 이뤄졌지만 소비와 투자가 아직 약한 것을 근거로, 일본이 디플레이션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는 판단이다.

최고수준의 일본 민간 싱크탱크로 꼽히는 일본경제연구센터도 마찬가지다. 스미오 사루야마 일본경제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은 "유효구인배율 1배를 넘는 것은 아마 정규직원보다 비정규직원, 아르바이트 등의 일자리가 많이 포함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주도의 임금인상이 가져오는 부작용도 만만찮다. 인재 확보가 어려워진 기업들은 임금을 꾸준히 올리면서 중소기업의 수익을 압박하고 있어서다. 업종에 따른 격차도 있다. 일본의 고령자가 늘면서 커진 시장, 즉 의료나 간호 분야 종사자의 임금은 대기업 직원에 비해 거의 제자리나 마찬가지다. 이들의 경우 비정규직 고용이 많아서 승진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스미오 사루야마 수석연구원은 "이 같은 환경은 일본 전체적인 임금상승 수준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진단했다.

'격차 해소'가 시급하다는 일본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정부가 민간 노동시장의 한계를 강제로 조정할 수 없는 것은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마찬가지다. 기업별로 노사교섭이 이뤄지는 것도 두 나라가 닮았다. 아베 신조 총리 정부는 이 때문에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강력하게 따를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이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현장의 근로자는 기업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소송당한 기업은 정부에 임금을 달리 지급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조치들을 통해 정규직.비정규직 간 격차가 좁혀지면서 일자리 문제가 보다 개선될 것으로 믿고 있다. 정부의 의지가 강한 만큼 기업의 반발도 거세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와 조정기간이 필요해 보인다.

■짙어지는 초고령화의 그림자

초고령사회, 일본에서는 10년 전부터 '간병'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치매로 고생하던 노모를 살해해 일본 전역에 충격을 안긴 50대 남성이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가 있다.

그동안 노모를 극진히 모셨다는 점을 인정받아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간병으로 약해진 몸과 마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자신 또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일본 사회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이런 사건이 벌어진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지금의 70대들이 일본 베이비붐 세대에 해당한다. 이들을 돌봐야 하는 40대 자녀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창 일해야 할 40대들이지만 부모의 간호를 위해 하던 일을 그만두는 사례가 늘었다. 생산 현장의 활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중장년층이 노동시장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배제되자 가구별로 장래에 대한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고령화는 인구감소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현재 일본 인구는 1억2000만명. 감소추세가 계속된다면 50년 후에는 8000만명으로 줄고 100년 후엔 5000만명까지 감소할 것으로 일본 정부는 보고 있다.

일본 정부가 걱정하는 것은 인구감소로 인한 시장의 축소다. 국내외 투자자들이 일본시장에 투자를 하지 않으면서 노동자의 임금인상은커녕 수익도 내기 어려워지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고령화 문제는 이런 점 때문에 우선순위에 놓인 측면도 있다. 인구감소 상황을 정면돌파하기 위해 가장 쉽고 빠른 대책으로 간호 종사자의 업무환경을 개선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출산율이 낮고 고령화된 사회가 일본 경제의 활력을 계속해서 감소시킬 요인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일본 경제전문가들은 '고령화=도전을 하지 않는 일본'이라는 프레임으로 고착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100번, 1000번 도전해서 999번 실패해도 한번만 성공하면 그것으로 세계를 휩쓴다는 생각이 많지만 일본은 실패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억 총활약 계획'의 궁극적인 목표는 도전하는 일본을 만들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특별취재팀 이병철 차장 김용훈 장민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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