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한국거래소, 정권교체에 얽힌 잔혹사


한때 여의도에서 '신의 직장'이라고 불렸던 기관 중 최고는 한국거래소였다. 연봉도 높고, 수많은 복지 혜택에 정년까지 편하게 다닐 수 있는 '철밥통' 직장이었다.

부러움은 질투로 이어지고 결국 여론의 날선 비판이 이어졌다. 한국거래소는 이 같은 비판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복지 혜택을 줄여나갔다. 요즘 거래소 직원들에게 물어보면, 신의 직장에서 '신'이 사라진 그냥 직장이 됐다고 말한다.

그래도 여의도에 근무하는 일반 직장인들은 거래소가 여전히 부러움의 대상이다. 높은 연봉에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다양한 복지 혜택도 있어 '배부른 소리'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직원과 달리 거래소 수장은 수난의 연속이었다. 역대 모든 정권이 거래소 이사장을 전리품의 하나로 여겨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냈다. 2008년 당시 이명박정부도 그런 관례대로 점찍은 인물을 내려보내려고 했었다. 하지만 당시 정권에서 원하지 않았던 A씨가 덜컥 신임 이사장으로 뽑혀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별로 무서울 게 없었던 거래소는 민간기관이 정상적인 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이사장을 선임했는데 뭐가 문제냐고 했지만 대가는 혹독했다.

방만경영이라는 질타가 정부 인사들의 입을 통해 나오기 시작하더니, 감사원과 검찰이 거래소를 털었다. 그래도 별로 나오는 게 없자 정부는 아예 거래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정부의 지휘체계 아래 넣어버렸다. 결국 A이사장은 취임 1년6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금은 공공기관 지정이 해제된 상태이지만 거래소는 당시의 트라우마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거래소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출신의 정찬우씨가 이사장으로 있다. 작년 10월에 취임했고, 취임 1년도 안돼 정권이 바뀌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본인만 알겠지만 대표적인 '친박' 인사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금융위 시절 시중은행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 때문에 지난번 특검 때 몇 차례 불려다니며 조사도 받았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하면서 증권가에서는 거래소 이사장이 곧 바뀌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 때문인지 요즘 정 이사장의 대외활동이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얼마 전 시민단체들이 하나은행 인사개입 문제 의혹으로 정 이사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집어넣은 특검에서도 조사만 하고 끝낸 문제를 문재인정부가 출범하면서 다시 조사한다고 한다.

정 이사장이 또다시 검찰의 칼날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 게이트와 연관이 있는지는 검찰에서 밝힐 문제지만 이미 한번 스크린한 사안이어서 다소 의아해하는 이도 많다. 이 때문에 거래소 전체가 뒤숭숭한 분위기다. 정권교체와 이사장의 중도사퇴라는 '잔혹사'가 10여년 만에 오버랩되고 있기 때문이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증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