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차장칼럼] 농협금융그룹의 고민

이세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7.04 17:22

수정 2017.07.04 22:47

[차장칼럼] 농협금융그룹의 고민

3년 전, 우리투자증권이 NH농협금융지주에 인수될 때의 일이다. 업계 1~2위를 다투던 우리투자증권이 NH농협증권에 흡수합병될 당시 많은 인력이 우리투자증권에서 빠져나갔다. '농협 직원이 되기 싫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적극적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워나가던 시절 농협금융의 최대 과제는 농촌 이미지 벗기였다. '금융의 모든 순간'이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내걸고 국내 4대 금융그룹에 오르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왔다.

하지만 2017년, 농협금융은 다시 '농심 제일주의'를 내세웠다.
'농부의 마음 통장' '농사랑 보장보험' 등을 출시하며 금융상품에도 농심을 가득 담았고,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과 이경섭 농협은행장을 비롯한 전 계열사 임직원이 주말마다 릴레이로 가뭄피해를 본 농가를 찾았다. 평일에도 임직원들은 수시로 일손이 부족한 농촌으로 향하고 있다. 3년 만에 다시 농심으로 회귀한 것이다.

농협은 "전례없는 가뭄에 조류인플루엔자(AI)까지 겹치며 어느 때보다 힘든 농번기를 보내고 있는 농민을 돕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취지는 좋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농협이 애써 쌓아온 선진 금융그룹 이미지를 스스로 벗고 있는 배경엔 농협중앙회가 있다.

농협중앙회는 올 들어 줄곧 '농심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농민을 위한 농협의 존재 이유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지난 2011년 신용과 경제사업 부문 분리(신경분리)로 농협금융이 탄생하긴 했지만 여전히 농협금융의 주인은 200만명이 넘는 농민 조합원의 출자로 이뤄진 농협중앙회다. 농협금융의 주인도 사실상 '농민'인 셈이다.

농협금융은 지난해 농협중앙회에 명칭사용료 명목으로 3834억원을, 배당금으로 358억원을 지급했다. 농협중앙회는 이 자금으로 농민을 지원한다. 농협금융이 돈을 벌어 농협을 먹여 살리는 구조다.

국내 주요 금융지주들이 2조원 클럽 가입 여부를 따지던 지난해 농협금융의 당기순이익은 4265억원에 그쳤다. 조선·해운에 물린 부실채권을 한 번에 정리하는 '빅배스'로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겪었기 때문이다. 지난 1·4분기 당기순이익도 2769억원에 머물렀다. 여전히 명칭사용료로 중앙회에 지급된 돈은 907억원에 달한다.

농협금융은 올해도 가뭄을 견뎌야 한다.
농협금융의 수익성이 낮아지면 농민에게 돌아가는 몫도 줄어든다. 4차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 금융환경은 시시각각 바뀌고, 금융에 대한 고객의 기대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가뭄에 타들어가는 농심만 챙기다 농협금융의 해갈이 늦어질까 걱정이다.

seilee@fnnews.com 이세경 금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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