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차장칼럼] 나누면 커지는 것이 권력이다

심형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7.23 17:10

수정 2017.07.23 17:10

[차장칼럼] 나누면 커지는 것이 권력이다

5000년 중국 역사상 가장 안정되고 부강했던 태평성세를 연 당태종 이세민은 자신의 형이자 왕권의 최대 라이벌이던 황태자 건성의 최측근 위징이라는 인물을 중용했다. 위징은 앞서 이세민을 죽이자고 줄기차게 주장했던 정적이었다.

태종은 위징을 중용했으나 위징의 잔소리에 자신이 좋아하던 사냥이나 연회를 베풀 때도 눈치를 봐야 했다. 위징은 태종이 몰래 연 연회장에 나타나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가 사냥하고 연회하는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쓴소리를 했다. 그러나 태종은 위징이 죽은 뒤 자신의 그릇됨을 비판하는 유일한 신하가 죽었다고 크게 슬퍼했다.

조선시대 대표적 성군었던 정조는 자신이 하는 일마다 반대했던 당시 야당 수장 심환지를 국정에 중용하고 종종 밀서까지 보냈다.
후대에 발견된 편지만 299통이 넘었다. 정조는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국정에 협조하라는 내용이 아니라 사사건건 반대하라는 내용을 적었다. 또 "어떤 안건에 대해 짐이 반대를 하더라도 적당한 시기가 되면 승인할 것"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야당 대표를 정치적 파트너로 인정하고 왕이 직접 사전조율을 한 것이다.

2017년 문재인정부와 대한민국 정치도 초기부터 성장통을 겪고 있다. 1기 내각 인사와 추가경정예산안, 정부조직법안 처리를 놓고 대치를 이어오다 겨우 지난 주말에야 정국 경색이 풀렸다. 결국은 대통령이 일부 양보하면서다. 그러나 뒷맛이 개운치는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청와대 정무기능에 대한 지적이다. 무능한 야당도 문제지만 처음부터 양보를 전제로 야당과 적극 협상을 했더라면 두달여 시간을 허비할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발언 하나도 주목을 받았다. "어떤 이유에서건 정치적 문제로 국민이 희생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국민이 선택한 정부가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13일 수석.보좌관회의. 문재인 대통령)

이 같은 발언은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발언과도 묘하게 닮았다는 얘기가 나왔다. "저도 야당 대표로 활동했고 어려운 당을 일으켜 세운 적도 있지만, 당의 목적을 위해 국민을 희생시키는 일은 하지 않았다."(2013년 9월 17일 국무회의. 박근혜 전 대통령)

대통령학 권위자인 함성득 한국대통령학연구소장은 최근 발간한 자신의 저서 '제왕적 대통령의 종언'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까지 지난 14년간은 공통적으로 국회를 멀리한 대통령이 국정을 이끌었다"며 "늘 국회를 비판했고 하루하루가 당파적 정쟁으로 보내는 정치 실종의 시간이었다"고 했다.


대개의 지도자는 권력을 나누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나누면 커지고 움켜쥐면 작아지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라는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중요한 교훈이다.
문재인정부가 성공을 위해 꼭 되새겨볼 교훈이다.

cerju@fnnews.com 심형준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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