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조선시대 부녀자를 위한 경제교육


"돈이 있으면 위태로운 것을 편안하게 하고 죽을 사람도 살리는 반면, 돈이 없으면 귀한 사람도 천하게 되고 산 사람도 죽게 만든다. 이런 까닭에 분쟁과 재판도 돈이 아니면 이기지 못하고, 원망과 한스러움도 돈 아니면 풀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돈이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고 하니, 하물며 사람이랴." 돈의 위력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이 문장이 유교가 번성하던 조선시대, 사대부 명문가의 안방마님이 자녀를 위해 남긴 말이다.

1809년 빙허각이씨(憑虛閣李氏)는 순한글로 쓴 '규합총서(閨閤叢書)'를 썼다. 그녀는 서문에서 "…이것들이 다 건강에 주의하는 첫 일이요, 집안을 다스리는 중요한 방법이라 진실로 일용에 없지 못할 것이요, 부녀자가 마땅히 연구할 바이다. 그러므로 이로써 머리글 삼아 집안의 딸과 며늘아기들에게 준다"고 밝혔다. 다섯 편으로 구성된 이 책은 첫 권은 술과 음식에 대해 썼으며, 둘째 권은 바느질, 길쌈 등, 셋째 권은 밭농사, 과수, 가축 기르기 등 시골살림의 즐거움, 넷째 권은 태교와 응급처치법 등, 다섯째 권은 길흉, 재난방지법 등을 담고 있다.

얼핏 보면 이 책은 요리법과 옷 짓는 방법을 소개하는 가정생활백과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은 여기에 그친 것이 아니라 집안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안주인의 입장에서 가족 모두의 건강, 자녀 교육, 가정 경제를 아우르는 지식이 담겨 있다. 둘째 권 옷 만들기 편의 말미에 생뚱스럽게도 돈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화폐로 통용되던 면포를 짜는 길쌈이 주로 부녀자들의 몫이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 거론한 것이 아닌가 한다.

빙허각은 진귀한 보배들을 서술한 다음, 중국 주나라 때부터의 돈의 역사와 삼한통보, 상평통보 등 돈의 종류에 대해 설명했다. 우선 "전(錢)이란 글자가 하나의 금(金)을 둘러싸고 두 개의 창(戈)이 싸우는 것이다"고 설명하여 경제의 본질이 희소한 재화를 둘러싼 경쟁이라는 것을 한마디로 간략하게 풀이했다. 다음 문장이 위의 돈의 위력에 대한 내용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자와 원금의 돈놀이를 뜻하는 자모전(子母錢)이란 항목에서는 다음과 같이 재테크를 설명하고 있다. "…모전을 내어 쓰면 자전이 따라오기를 처음과 같이 하니, 서로 번갈아 쓰면 쓰는 족족 돌고 돌아 그치지 않는 고로 거느려 오는 돈이 반드시 있어 용도가 평생 궁하지 않다 한다."

빙허각의 친가나 시가 모두 문벌로 이름을 날린 명문 사대부 집안이었다. 빙허각은 이조판서를 지낸 아버지 이창수와 방대한 '문통(文通)'을 쓴 유희의 고모이자 한글로 '태교신기(胎敎新記)'를 지은 사주당이씨의 시누이인 어머니 사이에서 1759년 태어났다. 그녀는 15세 되던 해 '임원경제지'의 저자로 유명한 서유구의 형인 서유본과 결혼했다. 그러나 뒤늦게 벼슬에 오른 남편이 숙부 서형수의 옥사로 벼슬에서 일찍 물러났다.
이런 까닭에 집안이 기울면서 낙향하여 몸소 농사를 지으며 생활을 일구었다.

조선시대에는 돈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천박하게 여기던 시대였지만 돈은 이미 실생활에 꼭 필요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비록 짧은 언급이었지만 이를 우리글로 딸들에게 전하려 했다는 점에서 빙허각은 이 시대 여성의 경제적 역할에 대해 큰 화두를 던지고 있었다.

이호철 한국IR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