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탈원전과 전기료

갈팡질팡하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역할이 자문기구로 결론났다. 정부도 공론화위원회가 시민을 통해 내려주는 결과를 전폭 수용하겠다고 했다. 이제 신고리 5.6호기의 운명은 '시민대표참여단' 손에 넘어갔다. 하지만 정부는 아쉬움이 남는 모양이다. 자꾸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가뜩이나 신고리 공론화위원회는 여러 문제를 안고 출범했다. 법적 권한이 없다는 지적은 차치하고라도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탈원전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고, 취임 후에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최근엔 정부 스스로 공정과 중립 원칙을 훼손하는 사례가 잇따른다. 요즘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탈이 날까 걱정이다. 정부가 탈원전에 빠져 공론화 과정은 물론 전력수급 등을 너무 가볍게 보는 듯해서다. 탈원전을 위해서는 수급불안과 추가 전기요금 인상 우려를 없애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정부는 이 두 가지에 홍보를 집중했다. 먼저 장기 전력수요 전망치를 건드렸다. 이를 산정하는 워킹그룹은 지난달 13일 2030년 전력수요 예측치를 2년 만에 10%가량 낮췄다. 원전 11기 분량(11.3GW)이다. 저성장 구조가 굳어져 전력수요가 크게 늘지 않으니 탈원전을 해도 무방하다는 논리다.

뒤를 이어 전력거래소는 기업에 생산라인 일부를 멈추라는 급전(急電) 지시를 한달 새 세 차례나 내렸다. 급전지시는 2014년 도입 이래 6차례밖에 발동이 안 됐다. 정부는 정당한 절차에 따라 진행한 것이라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역대 최대 전력수요 기록을 세웠던 작년 8월 12일엔 공급예비율이 8.5%까지 떨어졌지만 당시에는 급전지시가 없었다. 정부가 전력예비율을 10% 이상으로 유지해 전력공급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의심을 살 만하다.

수급 다음엔 전기요금이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이인호 차관은 7월 말부터 "탈원전을 해도 5년 동안은 전기요금 인상과 수급 우려가 없다"며 홍보전도사를 자처했다. 그러면서 한쪽에서는 심야 산업용 전기료를 올리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눈 가리고 아옹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면 제품 값에 이자까지 붙어 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물론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전기요금을 안 올릴 수 있다. 하지만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2011년 9.15 대정전이 그렇게 일어났다. 2005년 배럴당 40달러대였던 국제유가가 2011년 100달러대로 배 이상 뛰는 동안 평균 전기요금은 30%대 오르는 데 그쳤다. 주택용은 고작 4% 올랐다. 치솟는 물가 때문에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해서다. 한국전력은 2008년부터 5년 동안 10조원 가까이 적자를 봤다. 값싼 전기를 펑펑 쓰고 발전시설을 안 늘렸으니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

문재인정권이 끝난 뒤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말란 법은 없다.
사실 공론화를 통한 정책 결정은 아무리 공정하게 관리해도 성공한 경우가 별로 없다. 사패산터널, 천성산터널, 사용후 핵연료 같은 것들이다. 그리 서두를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