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과감한 복지정책, 사회적 합의 필요하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100일이 지났다. 지난 대선은 물론 그전 여러 선거에서 현 여당이 내세웠던 공약들을 볼 때 새 정부가 복지확대를 핵심 정책방향 중 하나로 삼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예상하지 못한 점은 정책 추진속도다. 특히 이번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단계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정책에 대한 숙고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조되고 있는 안보위기 속에서 지난 100일 동안 과감한 복지확대 정책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 물론 집권 이전부터 오랫동안 구상해온 정책들이라고는 하지만 막상 집권을 하면 이전에는 접할 수 없었던 새로운 정보들이 쌓이게 되고 정부로서의 책임감도 가중되기 때문에 급격한 정책변화에는 신중을 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최근 정부의 빠르고 파격적인 정책행보에 대해 우려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다.

복지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만 복지는 반드시 비용을 수반하므로 무작정 그 수준을 높일 수는 없다. 따라서 한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복지수준과 그에 따른 재원조달 및 분담방안 등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사회적 합의에는 심도 있는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고 그런 점에서 최근 정부가 발표한 여러 복지확대 정책들은 사회적 합의의 결과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게다가 정부가 발표하는 복지확대의 예상비용에 대한 의문도 가시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루카스 교수의 비판(Lucas Critique)이 말해 주듯이 정책이 바뀌면 사람들의 행태도 변하게 되므로 정책변화 이전의 정보에 기초해 평가한 새 정책의 영향은 부정확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복지확대는 결국 복지재정의 확대를 의미하고 이의 종착역은 결국 증세가 될 수밖에 없다. 재정지출 절감을 통한 재원조달은 필요한 복지재원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것이다. 지난 6월 말 발표된 정부의 조세정책 기조를 따른다면 향후 복지재원 조달을 위한 증세는 '부자증세'를 통해 이루어질 전망이다. 필요한 복지는 마땅히 제공돼야 하지만 그 부담을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나누어 지느냐는 일방적으로 정해져서는 안된다. 누진세 구조하에서는 소득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은 부담을 질 수밖에 없겠지만 적어도 많은 부담을 지는 계층의 명시적, 암묵적 양해를 얻는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고 그것이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다. 급여소득자의 거의 절반이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으면서 한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복지 부담을 '핀셋'으로 콕 집은 소수에게만 지우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만약 이런 행태가 정당화되고 당연시된다면 앞으로 다수는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소수의 재산과 자유를 제한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질 것이다.

당면한 안보위기 해결과 만약의 사태에 대응한 전략수립에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도 충분치 못한 엄중한 상황이다. 정부는 숨 가쁘게 달려온 100일을 뒤로하고 국가 경제체계에 큰 영향을 주는 정책에 대해서는 좀 더 숙고의 시간을 가지기 바란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