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분석]

국민 밥상 덮친 ‘푸드 포비아’ 살충제 또 써도 아무도 모른다

맹독성 살충제 관리체계 구멍
이번에 적발된 과수용 살충제 농가 처방전 없이도 구입가능
사실상 사용여부 조사 불가능 의약법체계 전반 재점검 해야


'살충제 계란' 파동을 불러일으킨 맹독성 살충제에 대한 당국의 관리체계에 심각한 '구멍'이 뚫려 있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번 정부 전수검사에서 적발된 살충제 중엔 수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한 살충제도 있고,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살충제도 있다.

특히 과수용 살충제는 농가가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지 비슷한 살충제를 재구입해 쓸 수 있는 상황이다. 정부 차원의 시급한 대책 마련이 없다면 살충제 계란 파동은 언제라도 재현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당국은 현재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있는 대책이 없다.

■'관리약사' 명의 빌려 중국산 피프로닐 판매

18일 경기도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농림축산식품부 살충제 계란 생산농가 전수검사에서 처음으로 적발된 경기 남양주의 마리농장(난각 08-마리) 농장주는 살충제 피프로닐을 포천시 신북면 기지리 소재 I동물약품점에서 구입했다. 강원 철원(09-지현)을 포함 4곳의 농가도 이곳에서 샀다.

피프로닐은 닭 같은 식용가축엔 쓸 수 없어 수의사 처방전이 필요한 약품이다. 하지만 I업체 대표는 작년 6월 중국에서 피프로닐 50㎏을 택배로 들여왔고, 증류수를 섞은 후 불법제조해 팔았다. 이는 살충제 계란이 올해뿐 아니라 지난해 여름에도 유통됐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약사법(제45조 5항)에 따르면 의약품 도매상의 경우 관리약사를 채용해 업무를 관리토록 하고 있다. 동물약품 도매상도 마찬가지다. I업체도 관리약사를 두고 있었지만, 이 약사는 불법유통 사실을 몰랐다. 경찰은 약사가 명의만 제공하고 실질적으로 관리감독을 하지 않았는지 추가 조사할 예정이다.

농장주들의 증언에 따르면 I동물약품점 대표는 직접 해당 약품을 판매하면서 농가에 살충제 성분에 대한 부작용 등을 설명하지 않았다. 한 농장주는 "동물약품점에서 약을 살 때 약사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비단 I업체뿐 아니라 이름만 걸어둔 관리약사가 전국적으로 수두룩하다는 이야기다.

일각에선 약사들이 동물약품점 근무를 선호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기도 한 만큼 지난 2009년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약사법을 개정해 약제사나 등록판매자(시험합격자)에게 점포판매업, 도매판매업, 배치판매업 등 판매자격을 부여해 이 같은 불법행위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제재없이 살 수 있는 과수용 살충제, 정부도 '속수무책'

더 심각한 쪽은 과수용 살충제다. 실제 이번 농식품부 전수검사에선 충남 아산(11-무연), 경기 연천(08-JHN) 등 2곳의 농장에서 과수용 살충제인 플루페녹수론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과수용 살충제의 경우 처방전 없이도 살 수 있고, 그 용처를 조사하는 경우도 없다는 점이다.

농약관리법은 농약 판매에 대해 농촌진흥청에서 관련 교육을 이수했거나 농약관리 업무를 3년 이상 종사한 이에게 전문 판매관리인 자격을 부여한다. 하지만 이 역시 행정적으론 현장에서 어떤 이가 적절한 약을 판매하고 있는지 감시할 도리가 없다는 게 경기도 관계자의 말이다.

무엇보다 이번처럼 과수용 살충제로 구입한 뒤 양계농장 등으로 용처를 바꿔서 사용할 경우엔 지자체에선 손쓸 방법이 전혀 없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현재 작물 병해충 등에 대해선 정기적 실태조사를 하고 있지만 이번처럼 과수용 살충제를 돌려 쓰는지 여부를 조사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뾰족한 수가 없는 건 중앙정부도 마찬가지다.
허태웅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정부도 과수용 농약을 이렇게 쓴다면 막을 방법이 없다"며 "다만 매년 3월과 7월 계란에 대한 무농약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소.돼지에 적용하는 이력추적제를 2020년까지 계란에 앞당겨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날 오전 9시 기준 전체 조사대상인 1239개 산란계 농가를 전수조사한 결과 49개 농가에서 살충제 성분이 과다검출돼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부적합 판정을 받은 일반 농가는 18곳, 친환경 농가는 31곳으로 나타났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김규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