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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소송 전문가는 변호사다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8.31 17:25

수정 2017.08.31 17:25

[여의나루] 소송 전문가는 변호사다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가 출범하자 많은 이들이 새로운 기회의 꿈에 부풀었다. 대학에서 이공계 과목을 전공한 이들도 그중 하나다. 오랜 기간 갈고 닦은 각종 공학지식을 통해 특허와 기술 분야의 전문변호사로 거듭나겠다는 새로운 꿈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해서 로스쿨에 진학한 이공계 출신이 지금까지 1963명이나 된다.

한편 변리사들의 소송대리권 부여 요구가 날로 거세지고 있다. 특허권 등의 침해를 구제하는 특허침해소송 대리를 기술전문가인 변리사가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로스쿨 도입 9년째인 지금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주장이다. 로스쿨은 전문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탄생했다. 다양한 지식과 전공을 갖춘 이들이 법률 실무교육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라는 게 로스쿨 도입의 취지다. 기술전문가인 변리사가 소송에서 그 전문성을 발휘하고 싶다면 변호사의 권리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에 맞는 법률교육을 받을 수 있는 로스쿨에 들어가면 된다. 실제로 52명의 변리사가 로스쿨에 입학했고 이 중 많은 숫자가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그 외에 133명의 회계사와 119명의 의사, 약사가 로스쿨에 입학해 법률을 배우고 있다.

로스쿨 체제의 원조이자 특허강국인 미국에서도 소송대리권은 변호사에게만 허용될 뿐 변리사는 소송 권한이 없다. 일반 의사가 특정 진료과목의 전문의가 되는 것처럼 변호사 중 특허변호사(patent attorney)가 특허소송의 대리를 맡는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변리사는 당사자가 원할 경우 법정에서 구두진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일본도 변리사 자격만으로는 소송대리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다수 특허강국이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분야별로 체계화된 전문가들의 각 직역과 전문성을 상호 존중하는 문화 때문이다. 특정 분야의 지식이 있다고 변호사만이 가지는 소송대리 자격을 무분별하게 허용할 수는 없다. 의사 자격 없는 의대 출신 변호사에게 약간의 의학지식이 있다고 수술을 허용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변리사에게 소송대리를 허용한다면 세무소송은 세무사에게, 건축소송은 건축사에게, 농업관련 소송은 농민에게 대리권을 허용하라는 요구가 나올 것이다. 이는 국가의 전문 자격사 운용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특허 무효심판 대리를 변리사가 독점하는 이상한 관행이 존재한다. 이는 특허 무효 여부를 사법기관(법원)이 아니라 행정기관(특허청) 소속 특허심판원이 판단하는 특허심판 강제전치제도와 맞물려 폐해가 심각하다.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변호사 외에는 행정심판 또는 심사청구나 이의신청, 행정기관에 대한 불복신청 사건을 취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도 현행 관계법령은 유독 행정심판 중 특허무효.권리범위확인심판은 변리사로 등록하지 않은 변호사가 대리할 수 없는 기형적 구조여서 개선이 시급하다.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이 없는 지금도 변리사는 충분히 법정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다. 감정인이나 감정증인 등의 방법으로 전문적 의견을 재판 과정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변리사들이 쉽지 않은 자격시험과 경험을 통해 얻어낸 특허와 기술 분야에 대한 전문성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다만 소송전문가는 변호사다. 국민에게 최적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은 소송전문가와 특허전문가가 서로의 분야를 존중하고 각자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시너지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곧 직역 간 상생이라고 믿는다.

김 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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