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낙하산의 경제학

금융권을 취재하다 보면 이 동네에서 작동하는 기묘한 시스템 하나를 만나게 된다. 시장을 움직이는 주역은 분명 민간금융사와 참여자들이지만, 사실은 그 뒤에서 모든 것을 설계하고 조정하는 관리감독기관의 역할이 대단히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금융시장 전체가 정부의 통제를 받다 보니 부작용 하나가 생겼다. 각종 유관기관의 기관장 자리에 정부 출신들이 대거 포진한다는 점이다. 평생 공직에 몸담았다가 퇴직하면 적당한 자리에 낙하산으로 내리꽂히는 일이 마치 법으로 정해진 양 당연시된다.

보통 이런 행태들은 비판받기 마련인데, 정작 해당 조직에 몸담은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낙하산이라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손익계산을 해보면 오히려 더 높은 자리에 있던 인사가 내려오기를 바라는 기관들도 있다. 금융권의 여러 기관들을 구분하려면 그 성격을 먼저 알아두면 편하다. 보통 '○○협회'라고 이름 붙은 조직들은 민간회사들의 이익단체다. '○○○공사' '○○○원'등은 민간기관의 탈을 쓴 사실상의 공공기관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원회 같은 강력한 정부기관의 통제를 받는다는 점이다.

오래전 한 민간협회를 담당한 적이 있다. 기재부 출신의 고위공직자가 협회장을 맡아왔는데, 어느날 갑자기 민간 금융사 출신 중에서 협회장을 뽑아야 하는 일이 생겼다. 당시 정권에서 '낙하산'을 근절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당장에 그 협회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민간 출신 협회장이 오면 기재부 과장들 앞에서 고개나 제대로 들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이 워낙 정부로부터 두들겨맞으며 살다 보니 그 앞에 가면 일단 주눅부터 든다는 말이다.

한 민간단체 임원은 "기왕에 힘센 사람이 오는 게 좋다"고 했다. 기관장이 누군지에 따라 외부에서 바라보는 조직의 위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런 낙하산들은 단점도 있다.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몇년 전 한 민간기관에 금융위원회 출신 인사가 내려왔는데, 원래 하던 일이 규제이다 보니 그 자리에 와서도 자꾸 규제만 생각했다. 당시 그 기관의 한 임원은 "생각을 바꾸게 하는 데 1년이 넘게 걸렸는데, 참 불필요한 시간들이다. 어차피 3~4년 정도 하면 나갈 사람 아니냐"고 푸념하기도 했다.

최근에 정찬우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사의를 표하면서 후임을 찾기 위해 4일까지 공모를 받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금융당국 출신들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데, 이와 비슷한 비중으로 내부 출신 이사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거래소 통합출범 이후로 13년째, 한번쯤은 자신들의 선배가 이사장이 되는 걸 보고 싶다는 열망들이 있을 법도 하다. 어쨌든 외부 출신들이 했을 때 큰 문제는 없지 않았냐고 누군가에게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위에서 내려와 몇년 뒤 갈 사람, 평생 여기 있다 수장이 된 사람, 누가 더 애정을 가질까요?" 수긍이 가는 얘기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증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