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한-러 정상회담] 대북 경제제재 거절한 푸틴…한·러 대북공조 ‘머나먼 길’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06 18:00

수정 2017.09.06 21:51

시각차만 확인
文, 北노동자 고용 중지 요청.. 푸틴 "3만명밖에 안돼" 거절
러시아식 해법 동참 제안.. 체제보장.핵포기 동시 추진
포기할 수 없는 러
반대진영 속 우군 확보 시급
文, 남.북.러 협력사업 제안.. 경제 통한 정치적 해법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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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러 정상회담] 대북 경제제재 거절한 푸틴…한·러 대북공조 ‘머나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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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조은효 기자】 '적의 친구'는 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어려운 숙제를 안고 문재인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빠른 시점에 러시아를 방문했으나 6차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에 대한 제재를 놓고 좁힐 수 없는 견해차만 확인했다. 최근 북.중 틈새를 파고들며 북한의 원군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북한 감싸기는 예상 외로 견고했다.

■한.러 대북제재 이견

문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에서 열린 한.러 정상회담에서 과거 북한이 6차 회담에 응하지 않다가 중국이 원유공급을 중단하자 대화에 참여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북한을 대화의 길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안보리 제재의 강도를 더 높여야 한다. 이번에는 적어도 북에 대한 원유공급을 중단하는 것이 부득이한 만큼 러시아도 적극 협조해 달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답변은 "북핵 문제는 압박과 제재로만 해결할 수는 없는 문제"라는 것이었다. 대북 원유공급 중단과 돈줄을 죄기 위해서 북한의 해외 노동자 송출을 금지해달라는 한국의 요청을 거절한 것이다.
중국과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일본과는 위안부 합의 문제로 동북아에서 이렇다 할 '우군'이 없어 불가피하게 취임 첫해에는 중.일부터 방문한다는 관행을 깨고 러시아를 찾았지만 되레 북.중.러 연합전선만 확인한 셈이 됐다.

푸틴 대통령은 제재 강화를 촉구하는 문 대통령에게 러시아식 북핵 로드맵을 강조했다. 이는 중국의 '쌍중단'(雙中斷, 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동시중단), 쌍궤병행(雙軌竝行,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체제 협상을 병행 추진)과 사실상 같은 것으로 미국이 북한의 체제를 보장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푸틴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북한을 견딜 수 없는 지경까지 압박해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중·러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는 한·미·일의 입장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이번 한·러 정상회담을 통해 대화론(제재무용론)을 강조하는 중.러와 "대화는 끝났다"며 제재와 압박을 강조하는 한.미.일의 간극만 더 선명해진 것으로 분석됐다.

푸틴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요청한 석유 금수조치와 북한 노동자 고용중지 요청에 대해 되레 "현재 러시아와 북한의 교역은 사실상 제로 상태로, 1.4분기 (러시아의 대북)석유.석유제품 공급은 4만t이었다. 다른 나라에는 4억t을 수출하는데, 분기에 4만t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또 "북한 노동자의 러시아 송출도 다 해야 3만명이다. 이것도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항변했다. 이런 주장의 이면엔 값싼 북한 노동력을 활용해 러시아 극동지역을 개발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해석도 있다.

■러시아 긴장완충지 역할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를 우군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한·러 협력사업을 통해 남·북·러 3각 협력의 기초를 다지자고 제안했다. 이는 '반대진영 속 우군'을 확보해 북핵문제 해결 촉진자로 삼는 한편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신(新)냉전 구도로 가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러시아를 일종의 긴장완화를 위한 '버퍼존' 역할로 보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이날 공동언론발표에서 "북한의 핵보유 지위를 인정하지도, 용인하지도 않겠다"(현장 동시통역 기준)고 발언한 건 북핵 불용에 대한 강한 원칙론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남·북·러 간 3자 메가프로젝트를 통해 경제협력 강화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부분은 경제를 지렛대 삼아 안보협력까지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비친 것이란 해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ehcho@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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