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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한국기업 울리는 ‘중국판 김선달’

장용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10 17:22

수정 2017.09.10 17:22

[차장칼럼] 한국기업 울리는 ‘중국판 김선달’

얼마 전 중국으로부터 한 통의 e메일을 받았다. 보낸 사람은 다짜고자 '내가 한국의 지식재산권을 지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칭찬도 받고 상금도 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오해를 받고 있다"며 "기자의 도움을 받고 싶다"고 했다.

e메일을 보낸 사람은 김모씨로 조선족으로 보였다. 구글 번역기로 작성한 듯 어색한 문장으로 가득한 e메일에서 김씨는 200여가지의 한국 상표를 보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상표들을 원하는 기업은 인민폐로 3만위안(약 510만원)을 내야 한다며 돈을 주지 않으면 중국 당국으로부터 단속을 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쯤되면 말이 '보호'지 멀쩡한 우리 브랜드를 '볼모'로 잡은 셈이다. 대한민국을 위해 봉사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중국 당국의 이상한 제도를 악용한 브로커 수준이다. 김씨는 한발 더 나아가 "중국 당국은 나를 지지할 것"이라며 "이의신청을 하더라도 1년 동안은 중국 현지에서 해당 상표를 사용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의신청 해봤자 소용이 없다"며 "죽어나가는 것은 회사"라고 몽니를 부리기도 했다.

문제는 김씨가 '보호'하고 있는 상표들의 면면이다. 아모레, 대교, 리바트, 파스쿠치, 하림 같은 대기업 상표는 물론이고 안동, 춘천, 횡성 등 지명과 '창경궁'과 같은 궁궐 이름까지 포함돼 있다. 심지어 '뽀로로'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묘향산' 등 북한의 지명까지 등장한다.

이 정도면 대동강물을 팔아먹었다는 봉이 김선달이 울고 가지 않을까 싶다. 남의 재산을 가로챈 주제에 '한국의 지식재산권 보호에 이바지 하고 싶다'고 공치사까지 늘어놓고 있으니 시쳇말로 '대륙의 클래스'를 제대로 보여준 셈이다.

제아무리 중국이 짝퉁천국이라지만 남의 나라 도시와 산천이름까지 팔아먹을 줄은 몰랐다. 사정이 이런데도 아직 국내 사정은 '눈 뜬 채 코 베이는'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중국 진출을 시작한 뒤에야 브랜드를 도둑맞았다는 사실을 안 업체들도 수두룩하다.

e메일을 보낸 김씨가 "한국 회사가 상표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자신들이 대신 출원해 놓았다"며 "내가 출원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중국인들이 출원했을 것"이라고 비아냥댈 정도다.


정부 차원의 대책이 절실하지만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외국에서 우리 국민의 재산을 마구 도둑질하고 있는데도 뒷짐을 지는 모양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 차원의 대책과 대응이 절실하다.

사드니 뭐니 하며 툭하면 자국시장의 문을 닫아걸며 애꿎은 기업들에 몽니를 부리는 중국에 적어도 상도의를 지키라는 요구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ohngbear@fnnews.com 장용진 생활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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