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킹핀'을 쓰러뜨려라

지난주 정부는 '새 정부 규제개혁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필자가 알기로는 이는 새 정부 들어 처음 제시한 공급측면의 성장정책이다. 최저임금 인상, 정규직 전환 확대, 복지 강화 등 그동안의 수요 진작 일색의 정책기조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우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사실 규제개혁은 식상한 주제이기도 하다. 여러 정부를 거치는 동안 규제개혁은 '경제 활성화'를 위한 단골메뉴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제개혁을 통해 경기침체 극복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은 적은 거의 없었다. 물론 규제 숫자를 줄였다거나 창업에 소요되는 기간을 대폭 단축시켰다거나 하는 등의 가시적인 성과가 그동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규제개혁을 통해 경제체질을 바꿀 만큼 근원적 개혁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동안의 규제개혁 노력이 실질적 결실을 보지 못한 것은 정책의 방향이 잘못돼서가 아니다. 역대 정부의 규제개혁 추진방향은 큰 틀에서 대동소이했으며 이번 정부의 정책방향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발표에도 포함된 '네거티브 규제시스템' 도입은 과거부터 항상 추진해왔던 과제이다. 물론 여러 차례 시도에도 불구하고 네거티브 규제시스템 정착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면 새 정부의 규제개혁이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고 성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필자는 수십 년 묵은 규제, 소위 '성역규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규제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규제와는 달리 성역규제는 사회 제세력 간의 이해관계와 이념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혁파되기가 매우 어렵다. 예를 들어 수도권 규제의 경우 지방과 수도권의 이해가 첨예하게 충돌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어느 정부도 손대지 못하고 있다. 또한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에도 '금산분리'라는 오래된 규제 프레임에 갇혀 향후 자본확충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묵은 성역규제는 창조적 파괴와 혁신을 가로막아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정부는 신산업.신기술 분야 규제를 과감히 혁파하고자 하지만 요즈음의 융합시대에 신산업.신기술이라는 것을 기존 산업과 기술로부터 엄격히 분리하기는 어렵다. 만약 신산업.신기술이 기존 '성역규제'와 충돌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이때 성역규제를 돌파하지 못한다면 신산업.신기술의 경제적 효과는 크게 반감될 것이다. 정부는 이번 발표에서 '사전허용.사후규제' 방식을 천명했는데 규제개혁의 효과를 무력화시키는 과다한 '사후규제'가 성역규제 영역에 도입되는 어정쩡한 타협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성역규제는 경제적 약자와 공익보호를 명분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성역규제 혁파에는 많은 난관이 따른다. 우선 성역규제에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또한 규제혁파로 성취할 수 있는 경제질서에 대한 새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규제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엽적인 수십 개의 규제보다 묵은 성역규제 하나를 푸는 것이 보다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우리가 처한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킹핀'을 찾아 쓰러뜨리겠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생각건대 성역규제가 그 '킹핀'이 될 수 있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