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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주택자 겨눈 대출규제 주거 취약층만 피해

정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13 17:12

수정 2017.09.13 17:12

선호도 떨어지는 주택 깡통주택 전락… 보증금 불안
대출 막혀면서 내집마련 계획 접고 세입자 머물러야
#. 서울 강서구에서 전세 1억원짜리 빌라에 살고 있는 김모씨(31)는 이달 말 이사를 앞두고 걱정이 크다. 새로 이사갈 집 계약은 마쳤는데 현재 살고 있는 집주인과 연락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는 부동산 중개인 조언에 따라 '계약 만료일에 보증금을 돌려달라. 응답하지 않으면 내용증명을 보내겠다'는 연락 끝에 집주인과 통화할 수 있었다. 김씨는 "계약서를 보고 집주인 등본을 확인해보니 현 거주지가 시세 9000만원에 불과한 원룸이었다"면서 "집주인이 혹시나 여러 곳에 투자해 자금이 막힌 상황이 아닐까하는 마음에 보증금을 돌려받고 이사 나가는 날까지 계속 불안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다주택자 겨눈 대출규제 주거 취약층만 피해

정부가 8.2 부동산대책 등을 통해 다주택자에 대한 대출을 옥죄고 있는 가운데 정작 주택수요의 맨 바닥에 위치한 전세입자들이 제일 먼저 피해를 입고 있다.

위의 김 씨의 경우처럼 자칫 수요가 많지 않은 지역이나 수요층이 두텁지 않은 주거형태에 세들어 사는 집의 경우 이미 깡통전세로 전락했거나 향후 집값이 하락해 전세보증금까지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 이보다 형편이 좋아 정상적인 주택에 세들어사는 세입자도 나을게 없다는 분석이다.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대출규제가 대폭 강화되면서 향후 내집마련을 아예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택담보대출이 줄어든 대신 전세자금대출과 신용대출은 8.2 대책 이후 오히려 늘고 있어 향후 전세값이 더 오를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커져가고 있다.

■자금 순환 문제 생기자 불안해진 세입자

13일 업계에 따르면 각종 대출 규제로 다주택자를 압박하겠다는 정부의 규제 카드가 오히려 세입자들의 불안으로 내몰고 있다. 8.2 대책 직후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 경우 집주인들이 자금 융통을 위해 전세 보증금을 높이는 경우가 많아 재계약시 세입자에게 부담으로 고스란히 전가되기 때문이다.

김 씨처럼 재계약대신 이사를 원하는 경우엔 집주인들이 보증금을 갑자기 높일 경우 새 세입자를 찾기 힘든 실정이다.

이 경우 법적으로는 전세보증금을 계약기간 만료에 맞춰 주인이 내줘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다음 세입자를 찾을 때까지 기다려 달라 해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공인중개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세입자를 못 구하는 경우가 꽤 발생하고 있다"면서 "지금 집이 여러채인 사람은 대출이 전보다 어려워졌기 때문에 집주인도 초조하고, 어쨌든 돈을 돌려받아야 하는 세입자는 더 불안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특히 최근 갭투자가 늘면서 깡통전세가 우려되는 매물이 많아진 가운데, 세입자의 전세자금을 믿고 여러채를 소유한 다주택자의 경우 대출이 막힌 상황에서 다음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면 그 부담은 세입자에게도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이 같은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에서 제공하는 전세보증보험 상품의 가입자는 올 들어 크게 늘었다. 수도권은 5억원, 그외 지역은 4억원까지 전세보증금에 대해 100%를 보증해주는 HUG상품의 경우 2년 기준 1억원 전세금에 대해 연간 12만8000원, 3억원은 연간 38만4000원 수준으로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HUG의 전세보증보험 가입건수는 지난 2013년 451건에서 지난해엔 3년만에 2만4460건으로 늘었고, 올해는 8월 2만6249건으로 이미 지난해 합계를 뛰어넘었다.

■가계대출 줄인다 했는데… 전세.신용대출 늘어

주택담보대출이 줄었지만 전세자금대출과 신용대출은 오히려 지난 8월 이후 큰폭으로 늘었다는 점도 투자자가 아닌 무주택 실수요자들이 더 큰 압박을 받고 있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당장 주택 매입보다 관망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늘면서 전세 수요자는 늘고, 계속되는 규제책에 전월세상한제도 시행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전세가가 오를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은행 업계에 따르면 지난 8월 시중은행의 전세자금대출은 전달에 비해 7000억원 넘게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증가폭은 9월만에 최대치로 8.2 부동산 대책 이후 주택담보 대출이 어려워진 영향으로 분석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최근 전세자금 대출이 늘어난 것은 (정부의 규제가 계속되면서) 집값이 떨어질 것이란 기대감에 전세눌러앉기 수요가 늘어난 것"이라면서 "하지만 매수세가 둔화되면서 시장이 조정국면으로 접어든 것은 맞지만, 가격이 하락할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난 12일 금융감독원의 8월 가계대출동향 자료에 따르면 은행권 가계 대출액은 전달보다 6조5000억원 증가했다. 주택담보대출은 줄었지만 신용대출을 포함한 기타 대출은 증가액이 전달보다 1조5000억원 가량 늘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은 "전체적으로 가계부채를 줄이려면 주담대 뿐만 아니라 신용대출도 줄여야한다고 전부터 주장해왔다"면서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규제가 생긴다고 해서 대출을 줄일 수 없지 않겠냐. 주담대를 줄이면 신용대출로 넘어가는 게 지극히 당연하다"고 말했다.

wonder@fnnews.com 정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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