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고소·고발 공화국' 오명 씻자

A씨는 B씨와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는데도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금품을 요구했다. 검찰은 A씨가 20년간 36회나 고소를 남발하고 그중 6건의 성폭력 고소사건이 무혐의로 처분된 전력을 확인했다. A씨가 성관계 직후 상대방 남성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확보한 검찰은 결국 A씨로부터 무고 혐의에 대한 자백을 받아내 지난 3월 그를 구속기소했다.

우리나라에서 고소·고발이 얼마나 무분별하게 이뤄지는지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다. B씨의 경우 다행히 우수한 검사를 만나 억울함을 조기에 해결했지만 여전히 개인적 악감정을 해소하려는 수단으로 고소나 고발을 악용하는 사례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한 해 평균 약 50만건의 고소·고발 사건이 접수되고 있다. 가까운 일본에 비해 약 60배나 많다. 무고에 해당하는 허위 고소도 심각한 수준이어서 2013년 4372건에서 2015년 5386건으로 2년 새 1000건 이상 늘었다. 하지만 실제 혐의가 인정돼 기소로 이어지는 비율은 30%에 불과하다. 가히 '고소.고발 공화국'으로 불릴 만하다.

법원 역시 '아니면 말고'식의 소 제기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아니다. 판결에 불만을 품고 상소(항소 또는 상고)가 아닌 판사를 상대로 내는 소송은 매년 20여건이 제기되는데 판사별로 돌아가며 36건의 소송을 낸 악성민원인도 있다. 무분별한 소송은 더 골칫거리다. 형사소송법상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범죄 혐의자가 이미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 다시 수사를 해 단서가 나오더라도 같은 혐의로는 기소할 수 없다. 하지만 일사부재리 원칙은 민사소송에선 적용되지 않아 남소의 주요인으로 지적된다. 취재 과정에서 C씨는 자신의 회사 직원이 자금을 횡령했다며 해당 직원을 상대로 무려 40건에 이르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기도 했다. 남소는 사법행정을 낭비하게 만들어 수사·사법기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

판결이 아닌 대안적 분쟁해결 방식의 하나로 '조정'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정이 성립하면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생겨 이의신청이나 상소가 허용되지 않는다. 당사자 간 결과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면서 불필요한 사회비용을 줄일 수 있고, 조정신청 인지대도 소송사건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해 '소송경제'를 확립하는 데도 장점이 있다. 그러나 승소나 패소 등 끝장을 봐야 하는 국민정서는 제도 활성화를 가로막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처벌 역시 솜방망이 수준이다. 무차별적 고소의 대표 격인 무고죄는 재판에 넘겨진 1206명 가운데 80%가량에게 집행유예 내지 벌금형이 선고됐고, 실형도 평균 징역 6~8월이 선고됐다.

무고죄의 법정형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무고죄에 대한 수사도 소극적이다.
현재 무고죄는 최초의 고소·고발 사건에서 무혐의로 밝혀진 피의자가 무고죄로 고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국적으로 무혐의 처분한 고소사건 중 무고사범 인지율은 1%대에 불과하다. 이를 처음부터 피의자에 대한 고소.고발인 조사 단계에서 무고 여부를 판단, 인지수사로 전환한다면 억울한 피해자 양산을 막을 수 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