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 Culture]

시대를 앞서갔던 DIVA 다시 무대에 오르다

뮤지컬 '사의 찬미'로 부활한 윤심덕
1920년대 유명세 누리던 가수에서 연인 극작가와 동반 투신하기까지 상상을 더해 그린 마지막 5시간
전시회로 재조명 받는 가수 김추자 1970년대 대표 '저항의 아이콘'
북서울미술관 '아시아 디바'展에서 당시 공연의상.레코드판 등 전시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소프라노이자 대중가수 윤심덕의 삶을 모티브로 만든 뮤지컬 '사의 찬미'에서 윤심덕과 김우진 역을 맡은 배우들이 열연하고 있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 디바' 전에 가수 김추자가 1970년대를 활동 당시 입었던 의상과 음반 포스터 등이 전시돼 있다.
시대를 앞서갔던 음악의 여신들이 뮤지컬 무대와 미술관을 통해 돌아왔다. 윤심덕과 김추자. 1920년대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문을 연 신여성 윤심덕은 뮤지컬 '사의 찬미'를 통해 부활했고, 1960~70년대 신중현과 함께 사이키델릭 음악을 국내에 처음으로 확산시킨 김추자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아시아 디바'전을 통해 찬란했던 과거의 발자취가 되살아나고 있는 중이다.

■윤심덕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한다, 뮤지컬 '사의 찬미'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너의 가는 곳 그 어데이냐/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너는 무엇을 찾으러 하느냐/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로다…'

격동의 20세기 초, 일제 식민지배 아래 놓여있던 한반도는 문명과 문명이 충돌하는 각축장이었다. 열강의 시대 서양 문물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닫힌 세계에 일대 혼란이 찾아왔다. 그 가운데 여성들의 변화도 두드러졌는데 최초의 여성 일본 유학생이자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였던 나혜석을 필두로 이른바 '신여성'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음악 분야에서 돋보였던 인물이 바로 윤심덕이다. 평양의 여염집에서 둘째딸로 태어난 그는 기독교 신자인 부모의 영향으로 신식 교육을 받아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일본 총독부가 주는 장학금을 받는 최초의 유학생이 돼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음악학교 최초의 조선인 유학생이 됐다. '왈녀'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호쾌한 성격에 뭇남성들에게 주목을 받았고 이는 스캔들로 이어지기도 했다. 1923년 유학생활을 마친 후 조국의 음악교육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꿈을 갖고 돌아오지만, 당시 조선의 문화적 토양이 조성되지 않아 좌절을 맛본다. 이후 28세가 되던 1926년 독창회를 열고 우리나라 최초의 성악가로 첫발을 내딛었다가 대중가수의 길을 선택, 레코드 음반 녹음을 하게 된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사의 찬미'는 그해 7월 일본에서 녹음한 것으로 윤심덕이 음반사 사장에게 특별히 부탁해 마지막으로 녹음한 곡이다. 독일 가곡 '다뉴브 강의 잔물결'을 번안해 윤심덕이 가사를 붙였는데 허무한 인생에 대한 철학이 담겨있다.

하지만 윤심덕은 그의 음악적 재능보다 가십거리로서 더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천재 극작가 김우진과의 동반 투신 자살 사건 때문이다. 뮤지컬 '사의 찬미'는 이 미스터리에 대한 상상력에서 출발하는 작품이다. 역사적 사실에 미스터리한 신원미상의 '사내'라는 허구 인물을 투입시켜 그들의 만남에서부터 1926년 8월 4일 새벽, 시모노세키 발 부산행 여객선에 탄 후 투신하기 직전까지의 5시간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밀도있게 그린다. 세 인물의 얽히고설킨 갈등과 미묘한 심리는 공연을 보는 내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의 긴장감을 조성한다. 공연은 다음달 29일까지 서울 대학로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

■사이키델릭의 여제 김추자 '아시아 디바'展

'거짓말이야/거짓말이야/거짓말이야/거짓말이야~/사랑도 거짓말~/웃음도 거짓말∼'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서 사이키델릭이라는 장르의 발전사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기타리스트 신중현을 필두로 1960년대 후반 싹을 틔우기 시작했던 사이키델릭 장르가 1970년대 독재정권의 탄압을 받으면서 대다수 금지곡으로 선정되는 등 한동안 자취를 감춘 것 처럼 보였다. 미국에서도 히피문화를 중심으로 시작된 사이키델릭 장르가 주는 강렬하고 몽환적인 느낌이 '퇴폐적'이라고 낙인 찍히면서 탄압을 받았기 때문이다. 반면 이 시기 포크음악은 반듯한 문화양식으로 인정을 받았다.

이런 가운데 김추자는 사이키델릭에 판소리와 소울을 섞은 독창적인 창법으로 "거짓말이야"라는 직설적인 가사를 외치며 1970년대 섹시한 엉덩이춤으로 대중을 사로잡는다. 당시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말이 유행어였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김추자의 노래들도 결국 불신풍조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지만 갖가지 스캔들과 자유분방한 행동, 패션으로 저항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1980년대 초 결혼을 하며 최근까지 모습을 감췄던 그는 20여년이 훌쩍 넘어선 3년 전에서야 공식적인 컴백을 했다. 이러한 그의 행보는 많은 한국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이러한 맥락에서 서울시립미술관은 김추자의 음악세계와 당시 그가 입었던 공연 의상, 레코드판, 공연 포스터 등을 전시하는 '아시아 디바:진심을 그대에게'전을 다음달 9일까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진행한다.


전시를 기획한 신은진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는 "세계적으로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과 과학 경쟁이 치열했던 그 시대에 세계대전의 전장터이자 식민지였다가 재건에 돌입하기 시작한 아시아에서는 반전쟁주의와 저항정신이 싹트기 시작했다"며 "특히 우리나라는 군사독재 하에 고도 경제성장기를 맞이하면서 문화를 통한 자유로운 표현에 제약을 받는데, 그 가운데서도 명맥을 이어오고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여성 아티스트로서 김추자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서울시립미술관은 김추자와 신중현, 한대수 등을 만나 미 발표곡을 복원해 전시하고 아티스트들이 김추자의 음악을 재해석해 발표하는 공간도 만들었다. 또 김추자가 활동했던 1970년대 아시아 전역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다양하게 전시해 당시의 정서를 한눈에 살필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