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성폭력 저지르고 성폭력상담소에 기부...'변호전략' 논란

최용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0.05 12:30

수정 2017.10.05 12:30

“찰칵”
A씨는 2014년 5월 지하철에서 20대 여성 치마 밑에 휴대전화를 들이밀었다. 휴대전화 카메라로 여성 허벅지와 속옷을 몰래 촬영했다. 경찰 조사결과 A씨 휴대전화에는 다른 피해 여성 2명 사진도 있었다.

서울동부지법은 2015년 1월 성폭력처벌법(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위반 혐의로 A씨에 대해 1심에서 300만원 벌금형을 선고유예했다. 이어 2심에서 ‘성폭력예방프로그램을 자발적으로 수강하고 성폭력상담소에 정기후원금을 납부하면서 다시는 이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며 다시 선고유예했다.

5일 성폭력 가해자들이 법원 양형기준 감경을 위해 성폭력상담소 등에 후원하는 ‘변호전략’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여성단체들은 법원이 성폭력 가해자 ‘일방적 후원/기부’를 형량 감경요소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성폭력 가해자 기부시도 2년간 100건 넘어
실제 A씨는 경찰에 붙잡힌 이후 2014년 10월부터 총 5회에 걸쳐 한국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에서 신용카드 결재로 회비를 납부했다. 하지만 선고유예판결을 받은 1심재판 이후 1회만 더 후원금을 납부하고 이후 일방적으로 후원을 중단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령상담소 소장은 “재판부는 피해자 의사와 무관하게 피고인이 제출한 영수증 하나로 감경했다”며 “이는 적절한 처벌을 기대하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것이며 공정성과 정의로움을 담보하는 재판이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성폭력 가해자의 기부가 진심이 아닌 ‘변호전략’으로 통용되는 점이다. 이 소장은 “가해자 감형을 위해 피고인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 전문변호사들이 나선다”고 성토했다. 일부 법무법인에선 ‘반성의 징표’로 가해자가 상담소에 후원할 것을 권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2년 넘게 성폭력상담소에 후원한 성폭력가해자 사례도 100건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 126개 성폭력상담소로 구성된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에 따르면 2015년부터 올 7월까지 총 7개 상담소에서 가해자 측으로부터 기부금 제안을 받았거나, 기부금을 받은 사례가 총 101건으로 드러났다. 가해자들은 일시후원금 입금, 정기후원자 가입 등 다양한 형태로 기부했다. 이후 가해자들은 본인 이외에도 가족, 변호사를 통해 기부금 영수증 등 증빙서류를 반복적으로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는 감형을 위해 후원금을 지급했다가 다시 돌려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정하경주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소장은 “2010년경 후원금통장에 무명으로 900만원이 입금됐다”며 “몇년 후 무명 입금 당사자로부터 ‘아들이 성폭력범죄로 재판 중이었는데 변호사 조언으로 빚을 내 900만원을 입금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감형돼지 않았다. 후원금 절반을 돌려받을 수 있냐’는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기부금으로 형량 결정 우려
전문가들은 피해자 합의와 상관없이 자금에 의해 형이 반영되는 것에 대해 우려했다. 돈을 통해 합의/기부금이 형량을 줄이는데 쓰인다면 법적 형평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

정승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해자 내지 피고인이 범죄로 인한 손해를 회복하기 위해 피해자·사회에 기여하는 걸 감안하는 형사사법 흐름이 있긴하다”며 “하지만 그 경우는 성범죄랑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성범죄는 재산문제나 신체에 일시적인 손상과는 다르다”며 “성적 자기결정권은 인간 존엄 중 한 부분인데 이를 금전적 보상이나 사회적기부를 통해 회복내지 상쇄할 수 있다는 게 성범죄 처벌 목적에 비추어봤을 때 부적절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포럼 박선영 변호사는 “재판부 역시 피의자가 기부를 사건 발생 전부터 했는지 닥쳐서 했는지 안다.
이를 꼼꼼하게 판단하는지 의문이다”며 “양형기준 감경요소로 ‘진지한 반성’이 있는데 사건 이후 기부가 이에 해당하는지 생각해봐야한다”고 말했다.

김미순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재판 중에 있는 가해자 기부행위는 성폭력상담소, 피해자 누구도 원치 않는 방법이다”며 “성폭력상담소는 가해자가 재판 중인 경우 후원금을 받을 수 없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진정한 반성은 성범죄를 재범하지 않는 것, 해당 사건 대가를 치른 이후 사회봉사 및 기부행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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