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구조조정펀드 보류 유감

강구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28 17:19

수정 2017.09.28 17:19

[기자수첩] 구조조정펀드 보류 유감

시중은행 첫 구조조정펀드 조성이 보류됐다. 우리은행과 유암코(연합자산관리)가 회생인가를 받기 전 기업에 투자하는 블라인드펀드다. 민간 주도 구조조정 모델이라는 점에서 금융당국과 업계의 기대가 있었지만 은행권 특유의 보수적 재무건전성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펀드 투자대상이 회생인가 전 위기기업으로 충당금을 더 많이 쌓아야 하는 만큼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하락을 의식한 것이다. 신한은행도 유암코와 구조조정펀드 조성에 나섰지만 목표 투자수익률과 투자기업의 가치측정을 두고 은행이 제3의 투자자와 이해상충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투자를 보류했다.

이는 은행들의 실적 포비아(공포증)와 관계가 깊다.
구조조정과 관련, 필요성.역할을 모두 통감하지만 매년 평가 결과 받는 지표가 우선인 은행이다. 국가와 시장의 미래보다는 당장의 안위가 내부에서 더 먹히는 이유다. 투자실패에 대한 책임론도 주저하게 만드는 이유다. 투자에 대한 첫 사례를 완벽하게 만들지 못하면 담당자 인사고과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다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시간이다. 지금 주저하면 위험을 대비할 시간을 허비하는 것에 불과하다. 조선.해운 업황 악화로 타격을 줬던 대출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은행의 지표가 어느 정도 개선된 지금이 미래를 준비할 최적의 시간이다.

지난 구조조정에선 KDB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감당한 부분이 많은 만큼 시중은행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2조9000억원 규모 신규자금은 산은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이 전액 지원하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구조조정 여파로 국책은행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나빠진 상황에서 '그다음도 국책은행이 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미래에 비극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구조조정을 위한 지원에 주저하는 것은 문재인정부의 일자리 창출 기조에도 반하는 행위다. 기업을 새로 만들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보다는 죽을 기업을 살리는 것이 더 빠르고 효과가 크다.

'망수행주(罔水行舟)'라는 말이 있다.
'물이 없는 곳에서는 배를 끌고 다닐 수 없다'는 말로 현실을 직시하고 헛된 망상으로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의미다. 물로 비견되는 기업들이 다 도산하면 은행의 미래도 없다는 말과 상통한다.
당장의 어려움으로 투자를 주저하고, 턱밑까지 어려움이 닥쳐서야 들여다보다가는 때는 이미 늦는다.

ggg@fnnews.com 강구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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